도림마을 대숲의 백로들 (사진제공_몽도게스트하우스)
어르신들, 뭐가 그렇게 재미나세요?
어르신들, 뭐가 그렇게 재미나세요?
복숭아숲이라는 이름의 도림마을 입구
복숭아숲이라는 이름의 도림마을 입구
깨끗한 화천 계곡, 인근 주민들까지 더위를 식히러 찾아오는 곳이다
깨끗한 화천 계곡, 인근 주민들까지 더위를 식히러 찾아오는 곳이다

지족에서 미조 방향으로 3번국도를 타고 가다보면, 꽃내중학교와 삼동초등학교가 나란히 있는 동천삼거리를 지나 고개를 하나 넘는다. 해질녘에 이 고개를 넘다보면 오른쪽 머리 위로 비스듬히 지는 해를 느낄 수 있다. 길을 중심으로 오른편에 있는 마을과 집들은 이미 해가 꼴깍 다 넘어가 그늘이 드리웠는데, 반대편에서는 해가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그 볕이 오래오래 머무는 마을이 있다. 바로 동천리의 한 부락, 도림마을이다. 

새로 난 도로 복판에 새로 생긴 동천 버스정류장, 그 옆으로 난 좁은 농로 초입에는 ‘동천마을(도림) 입구’라고 쓰인 작은 표지판이 전봇대에 붙어 마을로 가는 길을 안내하고 있다. 도림. 입 안에서 디귿과 리을, 미음의 자음들이 예쁘게 굴러다니는 이름이다. 농로를 따라 조금 걸으니 동천마을회관이 입구에서 반긴다. 
회관을 지나 마을 안으로 좀더 깊이 들어가보았다. 언덕배기에 시골집과 돌담이 옹기종기 자리를 잡았다. 돌담 위로 흘러내린 덩굴꽃, 집 안팎에 내 놓은 작은 화분들과 조그만 틈에도 빼곡히 심어둔 채소, 꽃, 나무들이 골목골목마다 정원을 이루고 있다. 마을의 보호수 아래 정자에서는 마을 어르신 몇 분이 모여 부채질을 하고 계셨다. 

“젊은 사람이 여 뭐하러 왔노?”
“여기 백로가 있다 해서 보러 왔어요.”
“백로는 저짝에 있고… 수박이나 먹고 가라.”

그렇게 엉겁결에 수박을 얻어먹게 되었다. 어르신들이 나누시는 고추 따는 이야기를 배경음악 삼으며 정자 아래를 내려다봤더니 초록초록한 부락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래도 마을에 왔으면 이장님은 만나보고 가야 할 것 같아 어르신들께 여쭸더니, 마을회관이랑 붙어 있는 집이 이장님 집이라며 알려주신다. 
“우리는 다 이장아~하고 불러. 우리들 아들이야, 아들.”

그렇게 동네 어르신들의 아들같은 최윤석 도림마을 이장을 만났다. 밭일을 하다 오셨는지 목에 두른 수건과 밀짚모자가 참 전형적이라 좋았다. 함께 자리한 마을 주민은 우리 이장님이 얼마나 마을 사람들을 잘 챙기는지 아시냐며 칭찬을 거듭하셨고, 총각 이장님은 별소리를 다한다며 나무라신다. 마을소개와 자랑 한 번 해달라는 부탁에 영 쑥쓰러워하시면서도 이야기가 줄줄 나온다. 

“여기가 동천2리다. 우리 도림이랑 도가머리, 중뫼, 목늠 이렇게 네 자연부락이 모여있다. 도림은 복숭아숲이라는 뜻이다. 여기 개복숭아 군락지가 참 많았거든. 옛날에는 70호도 넘는 큰 마을이었는데… 뭐 지금은 어르신들 스물몇 명 남짓 마을을 지키고 계신다. 우리 마을은 그냥 참 깨끗하고, 맑다. 가게라곤 셋 뿐인데 모두 마을의 자랑이다. 한번 가 보시라. 뭐라도 있으면 서로 나눠먹기 바쁘고...마을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마을이다.”라고 말씀하시며 마을을 향한 애정을 숨기지 않으신다. 

마을에 대나무가 참 많네요, 했더니 역시나, 옛날부터 죽공예가 발달하던 곳이란다. 아직도 수작업으로 대나무 용기를 만드시는 할아버지가 계신데, 요즘은 작업을 잘 안하시길래 왜 안하시냐 했더니 이렇게 대답하셨단다. 
“너무 더워서 다 이자삣다!”

마을회관 바로 건너편에 몽도게스트하우스가 자리하고 있다. 귀촌한 사장님 내외가 예쁘게 가꾸니까 손님도 많이 온다는 이장님 말씀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었다. 무엇 하나 허투루 놓인 게 없고, 그런 주인장의 취향을 동경하는 여행자들이 도로에서 멀리 떨어진 이 깊숙한 부락까지 찾아오는 이유를. 게스트하우스의 옆 골목을 돌자 마을 유일한 식당이라는 돼지고기집 동메돈가가 나무들에 폭 둘러싸여 있다. 서예를 하신다는 여사장님과, 과거 태평양을 누비며 참치를 잡았다는 캡틴 출신의 남사장님께 수박바를 얻어먹었다. 오늘은 수박을 많이 먹는 날인가 보다. 마지막 가게는 신작로에 있는 그린탑마트다. 아이들을 데리고 한번씩 방문하는 곳인데 갈때마다 외지에서 들어와 살기 어떻냐며 살갑게 챙겨봐주시던, 친정언니 같던 사장님이 계시는 바로 그 마트였다. 마을로 돌아오는 입구에는 새로 난 다리 밑으로 화천이 흐르고, 건너편으로 백로가 노닌다는 대나무숲이 울창하다. 

여행자로 이곳에 온다면, 화천 계곡물에서 한바탕 물놀이를 하고, 아까 보았던 고깃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 좋겠다. 배도 꺼트릴 겸 마트로 가 간식과 맥주를 산다. 장 본 비닐봉지를 한 손에 달랑달랑 들고, 석양의 마지막 햇볕까지 가득 받으며 푸른 논을 양쪽에 낀 시골길을 천천히 걸어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오겠지. 이날만큼은 핸드폰을 멀리 두고, 맥주를 꼴깍꼴깍 마시며 책을 보다가 밤에는 옥상에 올라가 반짝이는 것은 별빛뿐인 도림의 하늘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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