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백을 찾아가는 사람들
삶의 여백을 찾아가는 사람들
  • 강영자 기자
  • 승인 2020.08.14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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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문화사랑회, 역량강화활동시간통해 문화와 인생의 이야기 이어가
역량강화답사 출발 직전 안전한 여행을 다짐한 회원들의 모습
역량강화답사 출발 직전 안전한 여행을 다짐한 회원들의 모습
조선수군주둔지 적량성비 앞에서 박홍국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조선수군주둔지 적량성비 앞에서 박홍국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물건리 엘림마리나리조트 내의 공연장에서 즉석으로 이뤄진 이현건 대표와의 대화시간
물건리 엘림마리나리조트 내의 공연장에서 즉석으로 이뤄진 이현건 대표와의 대화시간

태풍 장미가 남해로 북상한다는 소식에도 더이상 미룰 수가 없어 진행되었던 남해문화사랑회(회장 서재심) 역량강화 현장 답사 교육이 지난 10일, 남해군 일대에서 있었다.
서재심 회장은 “새벽 5시부터 부디 무탈하길 바라는 기도를 올렸다. 무사히 보내면서 서로가 가진 해설 노하우를 배우는 시간을 갖자”며 “금산과 보리암공부부터 하려했으나 아무래도 안전상의 우려가 큰 코스라 빼고 일정조율을 했다”며 취지를 전했다. 이날 역량강화교육은 창선 적량성을 거쳐 미륵이 도운 마을들인 미조, 사항마을을 지나 물미해안도로와 보물섬전망대, 물건방조어부림, 엘림마리나리조트를 다녀왔다.

적량마을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보면 종3품의 적량첨사가 주둔했던 곳으로 조선시대 수군 요충지다. 남해는 ‘평산포 만호, 곡포만호, 상주포 만호, 미조첨사, 적량첨사’ 이런 지역이 많아 수군의 요충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첨사는 지금의 대령급의 직책이다. 그런 첨사가 주둔했던 적량마을에 가면 적량성의 밑돌이 많이 남아서 그대로 지금 현대 사람들의 집에 경계선이 되기도 하고 담이 되기도 한다”고 해설했다. 이어 “적량마을에는 굴항이 있었다. 굴항은 그 당시 바다가 육지로 깊이 들어앉은 ‘앵강만, 동대만, 관음포만’ 그런 만처럼 먼바다에서는 잘 보이지 않게 바다가 마을 안으로 들어온 형태로 수군 주둔지에 있는 굴항들은 배를 숨길 수 있는 공간으로 볼 수 있다”며 굴항의 흔적을 설명했다.

그 외에도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말은 최영 장군의 아버지가 한 유언이었다”며 고려말 홍산대첩을 승리로 이끈 무인이자 이성계와 함께 왜구를 토벌하며 북방을 지켰던 ‘최영 장군’의 사당인 무민사에서는 “이성계가 최영을 죽이면서 내세운 명분이 ‘탐욕죄’였다. 최영은 ‘내가 탐욕하지 않다는 것은 하늘이 안다. 만약 내가 탐욕했다면 내 무덤에 풀이 날 것이고 탐욕하지 않았다면 내 무덤엔 풀이 자라지 않을 것’이라 말하고 죽었는데 정말 최영 장군의 무덤에서 풀이 자라지 않았다. 현대에 와 그의 후손이 잔디를 묘소로 꾸미면서 지금은 잔디가 있다”고 설명하며 “초등학생, 중학생, 각 시기별로 느끼고 배우는 바가 다 다르다. 특히 감수성이 남다른 초등생일수록 역사답사, 남해여행답사를 학교교육과정에서 진행해 남해에 대한 추억과 더불어 고향에 대한 깊은 인상을 주는 게 의미 있는 과정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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