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월 15일 백령도 부근 해상에서 납북된 동진27호 어로장 최종석(삼동면 은점마을)향우의 딸 최우영(36살)씨가 5월 8일 어버이날을 맞아 아버지에 대한 추억과 아버지의 송환을 기다리는 간절한 소망을 편지에 담았다.

사랑하는 아버지께.

봄이 찾아 왔습니다.
어느덧 아버지가 납북된 지 어언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벌써 스무번째 봄과 어버이날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오늘도 봄바람이 지나가는 하늘선을 바라보며 “아버지”를 가만히 불러봅니다. 희미하게나마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당장의 송환이 어렵다면 건강한 그림자만이라도 북한에서 보여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5월이 되면 여기저기서 빨간 카네이션이 저를 보며 환하게 손짓합니다. 당장 달려가 아버지 가슴에 그 꽃을 달아드리고 싶지만 너무나 먼 곳에 계심을 알기에 ‘5월8일’은 저를 더욱 힘들게 합니다.

지난 날을 떠올려 봅니다. 1987년 1월15일 아버지가 타신 동진호는 백령도 부근에서 조업을 하다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치됐습니다.

동진호가 민간어선이었기에 당시 북은 간단한 조사만 끝내고 그해 2월 선원들을 송환하겠다는 의사를 정부에 통보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저희들은 설을 앞두고 아버지의 귀환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러나 그 즈음 김만철씨 일가족이 탈북해 일본에서 대만으로 망명신청을 했고, 정부는 이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자 북한은 즉각 동진호 선원 12명과 김씨 일가 11명을 맞교환하자는 제의를 했고, 정부는 이를 거절했지요. 고기잡이 나가신 아버지는 북에서 비전향 장기수로 몰리게 되었고, 그 후로는 생사확인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99년 1월 아버지가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다고 국가정보원이 발표했습니다.

그 뒤로 고마운 정부 관계자로부터 아버님이 정치범수용소에서 나오셨고 지금은 위독한 상태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정부는 지난 20년 단 한번도 공식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아버지가 납북되고 나서야 ‘아버지’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난날 생계를 위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실 때면 저희들에게 늘 편지로 가르치셨던 깊고도 넓은 마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86년을 마지막으로 보내신 아버지의 편지는 빛이 많이 바랬지만 제게는 소중한 재산 제1호로 남아 있습니다.

유난히 술을 좋아하셨던 아버지이기에 술을 많이 드시는 분을 보면 아버지 생각이 와르르 납니다. 어느 날 술을 그윽하게 드시곤 다락방에서 자고 있는 저를 살며시 안아주시며 함께 잠들었던 추억도, 아버지의 고향인 남해 바닷가를 거닐며 예쁜 사진들을 찍어주셨던 자상한 모습도 정녕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
지난해 10월23일에는 아버지의 환갑을 맞이해 온 가족이 함께 임진각 근처 소나무에 노란 손수건 400장을 달았습니다. 꿈에 그리던 송환의 날이 온다면 38선을 건너 오실 터인데, 아버지를 사랑하며 잊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거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버지의 송환뿐만이 아니라 다른 가족들의 송환을 위해 ‘노란 손수건’을 달아주셨습니다.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면 그곳으로 찾아가 마음을 달래 보고는 한답니다.

아버지께 간절한 소원 하나가 있습니다. 조금만 더 견디세요. 살 힘이 없으시더라도 그럴 때마다 아버지를 찾는 딸의 목소리를 들어주세요. 가진 것 하나 없었던, 있었다면 사랑하는 아내와 딸과 아들이 전부였던 납치된 노동자 ‘최종석’을 송환하기 위한 활동이 거리마다, 전국 근로 사업장 곳곳마다 퍼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아버지! 지난 날 정부는 동진호 선원 12명을 외면했지만 세상은 많이 바뀌어 지난 남북장관급회담에서는 납북자 문제를 공식제기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어떤 소식도 못 듣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모셔와 얼마 남지 않은 남은 여생을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제게 있는 모든 시간을 아버지께 바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