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따라 나선 길 위에서 그리고 그리다
자연을 따라 나선 길 위에서 그리고 그리다
  • 강영자 기자
  • 승인 2020.04.10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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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득 전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연구원, 본지에 수채화 연재 시작

꽃과 나무, 지구라는 너른 정원을 사랑하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서 꽃을 연구하던, 실내식물을 연구하던 이로 자연주의자로 노케미칼(no-chemical)생활을 하고 있다. 이름은 김형득. 남해군에서 원예, 그리고 꽃과 나무, 정원에 관심을 가져온 활동가라면, 또는 원예치료와 치유농업에 관심 갖고 활동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들어보았을 법한 친근한 이름이다. 이동면에 자리한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서 근무하던 시절, 2009년부터 이곳 남해에서 살다가 포근한 망운산 자락 따라 장군터 근처인 서면 서호마을에 5년 전 손수 집을 짓고 ‘노케미칼’생활을 실천하며 자연주의자로 살고 있다. 샴푸나 합성세제 등의 사용을 지양하고 베이킹파우더와 구연산 등을 활용해 빨래, 설거지 등을 하고 최대한 자연에 무리를 덜 주는 방향의 삶을 살고 있다.

1961년생 소띠인 그는 30년 공직생활을 명예퇴직으로 마치고, 지난해 말까지 ‘마음의 뜰 가꾸기’프로그램을 2년간 해왔다. ‘마음의 뜰 가꾸기’에 대해 물었더니 “그게 구체적으로 설명을 잘 할 수 없어서 그랬는지 잘 안된 것 같다”며 “사람들은 손에 딱 잡히는 걸 좋아하는데 이건 자연, 정원, 명상과 몰입이 한데 공존하는 것이었다. 정원을 가꾸듯 마음을 가꿔보는 시간인데 일단 눈에 보이는 건 없는데 준비하는 자로서 제 마음은 부담이 컸던 프로그램이었다. 시즌1을 마무리하고 다른 걸 구상하던 차에 아시다시피 코로나19가 닥쳤다”며 강제 휴지기를 설명했다. 자연과 동떨어진 삶을 살아본 적 없던 그는 집짓기에 집중했던 시간이 지나자 다시금 그림으로 옮겨갔다. “어린 시절부터 곧잘 그린단 소릴 종종 들었으나 정식으로 배운 건 남해 이진만 선생님께였다. 그림을 배워 2011년도에 첫 전시인 ‘꽃비가 내릴 무렵’을 갖기도 했다. 그러다 집 짓느라 돌 만지고 흙 만지는 재미에 빠져 그림은 잠시 미뤄두었는데, 여러 상황들이 다시금 그림 앞으로 데려다 두었다”는 김형득 씨.

코로나19사태에 대해서도 “사람이 자연에 해놓은 짓을 반사작용처럼 받는 듯하다.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에 불이 나 곤란이 왔듯 코로나19바이러스 역시 인간의 폐를 공격하고 있다”며 “‘As above so below(위와 같이 아래도)’라는 말을 항상 품고 있다. 꽃과 나무의 위만 보여지지만 그 위를 통해 아래를 유추해보게 되지 않나. 드러나는 세상과 숨겨진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추측해보는 것, 자연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보이는 게 있는 듯 하다”고 말했다.

그는 “길 위에 멈춰 서서 그림을 그릴 때의 그 집중과 몰입이 좋고 무언가 자신의 생각이 제대로 표현되었을 때의 성취감도 반갑다”고 했다. 이어 “일종의 창(窓)으로서의 그림, 길 위의 사람들을 매개해주는, 그림이 주는 기쁨을 함께 소통할 수 있어 감사하고 기쁘다”며 연재를 시작하게 된 소회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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