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가 하릴 없이 찾는 곳이 도서관이다. 남해군은 평생학습관 안에 화전도서관이 있어 글 읽기가 좋다. 매일 읽는 시집이지만 오늘은 양장본으로 잘 디자인된 최시인의 책을 우연히 선택하게 되었다. 박제천 씨의 편저로 한국시문학선집9호로 2008년 문학아카데미 社에서 출간되었다.

전반부에는 시인의 작품이 후반부는 홍신선, 문효치 등 유명시인들의 작품평이 실려있다. 필자가 천학비재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시에 관심이 많았지만 최시인의 작품은 처음이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들의 작품평에 다소 놀랐다. 

가장 먼저 펼쳐 본 시가 110쪽의 「미조라 히바리」란 제목의 시였다. 미소라가 누구인가. 작고했지만 일본의 당대 최고 가수였다. 처음부터 왜 “미소라” 라는 표기가 옳을 것 같은데 하필 “미조라”라 했을까는 의문이 생겼다. 이는 꽃이름 프리지아를 일본어식 표기인 "후리지아"로 시집 제목으로  단 시인이 있었기에 오류에 대한 일종의 트라우마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결국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필자는 인터넷으로 최시인에게 직접 물어볼 요량으로 약력 등을 알아봤다. 필자만 몰랐지 최시인은 중견시인이었고 일역 시집(『저 섬을 가슴에 묻고』)도 있었다. 그러면 최시인의 발군의 일본어 실력을 믿어야 한다. 과거부터 필자는 미소라가 한국계인지 일본계인지 무척 궁금했다. 한국의 인터넷에서는 당연 한국계로 묘사되어 있고 일본 워키토피아 등 사전에는 아예 한국이란 말조차 한 마디도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이 시에서 미소라는 최영식 씨의 연인으로 묘사되어있었다. 필자의 궁금증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물론 시라는 특수한 공간이라 시어로의 표현이 아닐까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본문에서 반복해서 “미조라”라는 표기도, “최영식의 여자”로 명기 된 점을 보면 사실로 간주된다. 

이 가수를 생각하면 필자는 일본의 또 다른 유명 가수 미야코 하루미가 생각난다. 이 가수는 분명 한국계로 본명이 이춘미(李春美)이다. 학창 시절 일본어 공부를 위해 노점상에게 산 복제본 테이프로 노래를 반복해서 듣곤 했다. 미야코의 노래도 절절한 목소리로 꺾임이 좋았던 기억으로 보면 노래만 일본 가요였지 보통의 한국인 창법이었다는 점을 감추기 어려웠다. 

최시인은 “나긋이 저음으로 다가와서 최영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데, 이는 최영식씨 마음만 사로잡은 게 아니다. 전후 일본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마치 역도산이 일본인의 자부심을 더한 것처럼. 이 모두 한국인이라면 역시 일본 유명 연예계 인사는 한국인들이 다수임에 틀림이 없다. 편저자의 평처럼 여기서 “상상력과 이미지의 비의”는 「내 영혼속에 엎지른 잉크 흔적」은 “영혼 속에 선연하게 남은 내 젊은 날의 포동화” 뿐이 아니다. 아마 미소라의 노래에도 묻어난 “처연성”도 있다. 실제 미소라가 한국계였다면 일본 현실이 투영된 민족적인 처연성과 애잔함이 그녀의 가슴속에 남아 노래로 표현되었을지 모른다. 필자는 이미 경험 한 바다. 미야코의 노래에서다. 그 가 부른 “미나토마치 주산번지”는 갈 곳 잃은 중년들의 마음을 잘 표현했고 당대에 히트를 쳤다. 장석주의 평처럼(265쪽) “가련한 것들을 향한 측은지심”이 미소라로 향했다. 이는 최 시인의 심성에는 “일찍 작고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351쪽)”에 연유하고 있다. 

새로운 진실을 알게 된 기쁨은 크다. 우연한 기회에 최 시인의 마음에 허락도 없이 들어 가본 듯. “지친 듯 그녀의 영혼이 바다를 건너” 오늘 여기까지 왔구나 생각하면 영혼의 경계는 없고 기억의 조각 모음은 늘 우리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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