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옥순 향우 (이동면 다초ㆍ안성과수원농장 대표)
일주일에 한번씩 오는 아들이 문득 떡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그래? 그럼 지금 만들지 뭐.
나는 집에서 떡 만들기를 좋아하는 촌스런 시골 이쁜 아지매이기에.
난 설거지를 마치고 반 바가지가 넘는 쌀을 뽀얗게 씻어 약수터에서 떠온 물에 담갔다.

예전엔 쌀방아를 일년에 두 번 정도 찧었기 때문에 이맘 때 쯤의 쌀은 말라서 캥캥하지만 요즘은 먹을 때마다 정미를 하니 쌀이 부드럽고 맛도 좋아진다. 그래서 한 시간 반 정도 담가둬도 떡쌀을 만들 수 있어서 좋고 참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 

우리 어릴 적 떡 만들기의 기억은 지금 한번씩 생각해 내기만 해도 고단한 시절이었지만.
불린 쌀을 절구에 넣어 손가락이 다 부르트도록 빻아서 체로 친 다음 또다시 얼마를 빻아서
체로 쳐내는 힘든 과정을 반복해서 거쳐야만 했다.
커다란 시루에 밀가루나 등겨로 반죽을 하여 허리춤에 돌려 김이 안 새도록 했고 불도 잘 지펴야 떡이 제대로 익어서 맛난 떡으로 변신한 걸로 기억이 난다. 처음엔 조금 센 불로, 어느 정도 익은 다음에는 약한 불로 뜸을 드리며 정성을 드려야 했다.

하지만 떡 익는 냄새는 물집이 잡힌 아픈 손가락을 잊게 할 정도였고 고프지도 않던 배를 꼬르륵 꼬르륵 거리게 하기도 했다. 요즘 시장이나 마트에 가면 언제든지 맛깔스런 떡을 살 수도 있지만 나는 예전의 떡에 대한 정성스럽던 기억을 우리 범생 아들과 양념 딸한테 나누어 주고 싶어서 주로 쑥개떡과 인절미를 집에서 잘 만들어 먹는다.

요즘 한창 파릇파릇한 쑥이 많이 나기에 몇 일전 쑥을 한바구니 캐서 푹 삶아서 냉동실에 보관했는데 냉동실 속의 쑥이 날 잡아 먹으라고 하는 것 같아서 바로 쑥버무리 떡 만들기 작업에 들어갔다.

봄 햇살을 받으며 자란 쑥향기를 생각하면서 작년 남해에서 가져온 강낭콩을 삶아서 쑥과 함께 설기설기 섞은 쑥버무리. 찜솥에 배보자기를 찬물에 헹궈 깔고 불을 올리고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오르면 준비해 놓은 고운 떡가루를 쑥버무리와 하얀 백설기 반반씩 얹어 놓으니 뿌듯하고 우리 범생 아들과 양념 딸이 좋아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 마음이 뿌듯해진다.

벌써 시간이 저만큼 지나고 뒷마무리를 하는 내 손길은 바쁘고 강낭콩 익어가는 냄새랑 쑥  냄새가 온 집안 가득하고 흠~흠 오르는 김처럼 내 기쁨도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오후까지 자고 있는 범생 아들과 양념 딸 귀에다 대고 “오늘의 메뉴는 쑥버무리 떡이 옵니다~” 하니 눈도 안 뜨고 웃으며 내 볼에다 뽀뽀를 해준다. 멋진 대학생으로 변한 울 아들의 뽀뽀, 생각만해도...

금방 쪄낸 떡과 과일쥬스로 차린 밥상엔 울 식구들 건강 뿐만아니라 떡을 쪄내는 엄마의 마음도 아들딸의 마음속에 남으리라 기대하면서, 그리고 우리의 떡만들기를 우리 딸한테 가르쳐 주어야 하는 마음도 생긴다.

떡을 접시에 조금 담아서 옆집에 갔다드리니 쉬는 날 이렇게 떡까지 만들었냐고 하면서 마냥 반가워하시는 모습은 우리 이웃의 정겨운 삶 그 자체인거 같아서 마음 뿌듯했다.

 잘 아는 언니네 초인종을 누르고 떡을 쑤욱 내밀자 그 언니 “넌 도깨비니 언제 떡을 다하고.”. 이래서 난 사는 재미를 느끼고, 살맛나는 세상에 사는 난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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