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양지귀(洛陽紙貴)
낙양지귀(洛陽紙貴)
  • 남해신문
  • 승인 2019.12.06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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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洛陽)의 종이가 귀(貴)해지다”
[저서(著書)·책(冊)등이 호평을 받아 매우 잘 팔린다는 뜻]

‘낙양의 종이 값이 크게 오르다’. 어떤 책이 큰 인기를 얻게 되면 그 책을 많이 만들기 위해 그만큼의 종이가 필요하므로, 종이가 귀한 옛날에는 종이 가격이 오르게 마련이다. 곧 책이 많이 팔려서 요즘 같으면 베스트셀러가 됨을 일컫는 말이다.
중국 허난성(河南城)의 도시 낙양(洛陽:뤄양)은 후에 ‘성주(成周)’로 불리다가 양(陽)이 붙게 되면서 현재 이름이 되었다. 그 후 장안(長安:시안)과 함께 중국의 역사적인 양대도시다.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 진(晉)나라의 유명한 시인이던 좌사(左思)는 제(齊)나라 수도 임치(臨淄)출신으로서, 그는 가난뱅이이면서 말더듬과 얼굴 또한 추(醜)했지만 문장(文章)만큼은 탁월했다.
좌사가 젊었을 때 아버지가 주위 사람들에게 ‘저 아이는 도저히 내 젊은 시절에 미치지 못해 ….’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는 그때부터 분발하여 학문에 힘쓰고 창작(創作)에 몰두하였다고 한다.
그는 처음 1년간 고심하여 〈제도부齊都賦〉를 썼다. 흡족한 그는 이어서 〈삼도부三都賦〉를 쓰기로 작정했다. 삼도란 삼국시대의 위(魏)나라 수도 업(鄴), 촉(蜀)나라 수도 성도(成都), 오(吳)나라 수도 건업(建業)을 말한다.
좌사가 작품구상에 한창일 때, 누이가 갑자기 궁중으로 불려 올라가게 되어, 그도 함께 수도인 낙양(러양: 당시 중국 아홉 왕조의 고도古都)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으며, 뛰어난 문사(文士)들이 기라성처럼 즐비한 중앙 무대의 분위기에 자극을 받았지만 집필 작업은 지지부진했다.
스스로 ‘내 공부가 부족한 탓이야!’라며 자책하기도 했다. 절감한 좌사는 비서랑(秘書郞)이 된 후, 궁중에 보관되어있는 각종 문헌을 탐독하여 학문적 시야를 넓혀 나갔다. 각고의 노력 끝에 드디어 10년 만에 〈삼도부〉를 완성했지만, 처음에는 아무도 작품의 진가(眞價)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당시 박학(博學)으로 이름난 황보밀(皇甫謐)과 사공(司空:정일품)으로 있으면서 중앙 문단에서 이름을 날린 시인이기도 한, 장화(張華)가 이 책을 보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삼도부〉의 진가를 안 장화는“아니, 이런 훌륭한 작품은 내가 보기엔 반고(反庫)나 장형(張衡)을 능가하고 있소이다”
반고나 장형은 한(漢)나라 사람으로, 반고는〈양도부兩都賦〉, 장형은〈이경부二京賦〉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대시인(大詩人)이었다.
그런 훌륭한 사람들의 작품을 뛰어넘었다는 정화의 극찬에 금방 화제가 되었고, 글을 읽는다는 사람들은 지식인 반열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앞다투어 〈삼도부〉를 베껴다 읽었다. 그 바람에 낙양안의 종이가 갑자기 동이 나서 종이 값이 폭등하는 결과를 불러일으켰고, 즉 종이의 수요가 많아져서 종이 값이 올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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