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철명상디자인학교 교장
박 철명상디자인학교 교장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나의 실체를 제대로 증명할 수 있을까? 삶의 의미는 무엇이며 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나와는 다른 생각과 감정이나 환경의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여 살아갈 것인가? 누구든 살아가는 과정에서 인생에 대하여 고뇌하며 삶의 방향을 설정할 때면 한 번쯤 생각해보는 단어입니다.

사실 나를 어떻게 볼 것이며 또 어떻게 정의 내릴 것인가라는 담론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다루어야 할 중요한 영역 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처럼 소중한 담론을 철학의 관점으로만 치부해버림으로써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 양 소홀히 취급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설혹 이것이 특별한 관점으로 인식하여 주체적으로 나를 이끌 중심축으로 인지한다 하여도 객관적으로 증명할 사안에서 어느 쪽이든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 대해 마냥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이는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라는 논지로서 증명할 사안도 아니며 더군다나 지식이나 정보나 이론, 학술로서 다루어야 할 소재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미 드러난 인식에 기준한 평가가 아니라 명확히 자각(自覺), 자득(自得)의 능력으로 차원 변화를 증험하는 것이 나다움을 회복하는 길이라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한 사람의 역사에 견주어 해와 달과 별, 지구가 생긴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인류 탄생의 시초에서부터 지금까지, 전체 생명의 동화작용과 상보 협력의 생태계의 진화 역사 이후로 지금까지, 성현들의 가르침으로 예도와 겸손을 익힌 날로부터 지금까지, 최초 조상으로부터 이어온 성씨의 역사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전쟁과 다툼과 치고 빼앗는 흥망의 역사 속에서 생명의 귀중함을 터득한 이후 지금까지, 이별 기쁨 분노 절망의 감각을 견뎌내며 강(强)·약(弱)·온(溫)·냉(冷)으로부터 내공을 쌓은 후로 지금까지. 이러한 역사에서 나는 내 안에서 지각될 지구의 운명이 나로 연결되어 인류 사 전체를 대변할 능동적 주최자라는 점에서 보다 용이한 자각(自覺)이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차원에서 “오늘 맞이하는 하루는 지구의 탄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요, 나의 인생에서 최초이며 최후의 순간입니다.

일체 생명이 나와 함께 하며 뭇 생명의 환희와 감사와 사랑의 기쁨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입니다. 만약 이 아름다운 감응을 내 마음에 새기지 못한다면 나의 실체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라는 이치를 상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사람이란 그저 태어나고 죽는 것이라든가 돈이나 재산이 많고 적음이 삶의 능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매일 죽어 다시 태어나는 신념으로 거듭 나 조금씩이나마 사람의 자격을 만회하며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진화하여 나아가는 것이 도리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인류 진화의 한 축을 이을 절체절명의 과제이면서 사람이 지녀야 할 가장 아름다운 가치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진화란 단순한 변천이 아니라 그 속성에서 차원 변화를 동시에 이끌어야 한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치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하늘을 날 듯이 의식의 차원변화를 동시에 이끌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야 ‘내가 나답다’ ‘내가 나였다’ 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보면 한 사람의 의지나 생명력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 해도 생명의 보고(寶庫)라 할 의식에서 영적인 가치를 섭렵하지 못했다면 그는 온전히 사람의 의무를 다했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태어난 의미에서 보면 나는 이 우주 한복판, 지구의 아시아 동북부 한국 그중에서도 남해에 태어나서 한 영역을 자리 잡고 하늘이 준 사명과 땅이 준 자애(慈愛)를 거울삼아 최고의 영적(최령자, 最靈者) 사람으로 거듭 태어나 본래의 능력을 발휘할 가장 존엄한 사람입니다. 여기에다 자고(自古)로 몸과 마음은 하나의 체로 형성된 동질의 기화 작용이며 성품도 하나의 원리와 성분에서 출발했다고 하는 선각자의 말씀도 있습니다. 이를 일러 현명한 사색가들은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완전체였습니다. 그 완전체로서의 나, 그 실상을 제대로 알고 체험하는 일이 일생일대 최대의 기쁨이라는 목표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만물의 영장으로서 모든 생명을 이끌고 나아가야 할 사람의 책무요 의무입니다. 이른바 내 안에서 나를 만나는 일입니다. 내 안에서 나를 만나 그 중심부에 서게 되면 전체를 이끌 강력한 존재가 됩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중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거짓 나(생각과 감정에 매몰된 나) 안에 있는 완전체로서의 나(본성의 실체를 만끽한 나)를 만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를 이룰 중추적 기능이라 할 내 안에서 자라는 천성을 어떻게 만날 것인가? 천심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유의미한 나의 천성은 무엇이며 지금의 성격이 과연 나의 천성이라 할 수 있는가? 천성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과연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지, 내 안에서 나를 만나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인생에서 나와 진실한 대화를 주고받은 일이 몇 번이나 있는지 끊임없이 탐구하고 또 탐구해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본성(本性)으로서 자연한 이치에 합당한 가치에서 ‘사람이면 다 사람인가,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는 말에 부합할 합리적 요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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