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천면 강진로130-17에 소재하고 있는 문수선원은 바닷가 언덕에 안전하게 자리 잡은 채 진섬을 내려다보고 있다. 먼저 이곳을 들어서면 왼편 담에 동자승들이 익살맞게 포즈를 취한 다양한 조각상이 눈길을 끌어 잠깐 웃음이 지어진다. 어제 치른 경로잔치의 흔적을 따라 효천스님(주지스님)이 기다리고 있는 종무소로 갔다. 효천스님은 지난 11일 이곳에서 설천면 어르신들을 모시고 ‘어르신들 오래오래 건강하세요’라는 슬로건으로 경로잔치를 열었다. 이 행사는 지난 1월 설천면과 문수선원이 ‘희망씨앗 나눔업무협약식’을 체결하면서 따듯한 봄날 어르신들께 점심공양을 하겠다고 했는데 그 약속이 이루어졌다. 현재 설천면에 거주하는 800여 명의 어르신 중 거동이 가능한 500여 명의 어르신을 이날 버스3대와 봉고2대를 동원하여 모셨고 내빈 100여 명도 참석하여 뜻 깊은 행사가 되었다. 효천스님은 이날 직접 사회를 보면서 “설천면에 계신 형님 누님들 왜 이렇게 젊으세요? 네? 좋은 동네 살아서 그런가 봐요? 저는 여기 문수선원에 주지를 맡고 있는 효천스님이라고 합니다”로 구수한 입담과 정겨운 말솜씨로 포문을 열어 모두 박장대소했다. 행사 다음날인 12일에 다시 뵌 효천스님은 “이곳에서 낚싯대 없는 낚싯줄 드리우고 조용히 어부처럼 살고 싶다”며 “이런 걸 세상에 알리는 게 싫다”고 하셨다. 하지만 필자는 물러서지 않고 30년 전 남해로 와서 화방동산을 건립하고 지역 내 어려운 계층 발굴과 나눔 문화 확산에 적극 동참한 내용 등을 열심히 캐내었다.                                -편집자 주

▪ 효천스님 어제 수고 많으셨지요? 얼굴에 붉은 게 돋아나 있는 걸 보니 피로가 채 가시지 않은 듯합니다. 하루 더 지난 후에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좀 서두른 것 같아 마음이 쓰입니다.
=아닙니다. 괜찮아요. 시간이 좀 지나면 저절로 없어져요. 며칠 동안 바람이 세게 불고하여 행사 날에도 그런 날씨가 계속 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으로 잠을 설쳤더니 이렇게 피부가 표시를 내네요. 감기가 와서 목소리도 약간 변했습니다. 오전까지 원고를 달라는 곳이 있어 그것까지 했더니 더 표가 나는 것 같으네요. 

▪ 행사 날 무릎담요와 보온병도 준비하시고 음식도 푸짐하게 준비하셨을 뿐 아니라 사회도 직접 보신다고 식사도 제때 못하셨다고 하던데 
=어렵게 한 자리에 모이신 어르신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고민하고 의견을 모아 준비를 했지만 음식에서 아쉬운 부분이 좀 있었다. 마른 생선을 하루 전에 미리 쪄 준비를 했더니 약간 딱딱해져서 어른들이 드시기 불편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년에는 멍게를 준비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들이 있어 그렇게 할 생각이다. 제가 일에 대한 욕심이 좀 있다 보니 사회까지 보게 되어 사실 때를 놓치긴 했지만 그게 뭐 대수겠나. 

▪ 버스3대 봉고2대를 이용한 어르신들은 “나이 많은 사람을 불러주어서 정말 고맙다, 집까지 무사히 도착하게 해줘서 더욱 고맙다”는 말들을 남긴 걸로 알고 있지만, 설천면사무소의 자체평가에서는 어떤 말들이 있었는지
=최적의 환경에서 적당한 인원으로 만족을 했다는 말들이 있었지만 좀 더 준비를 잘할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멀리까지 나오시는 게 불편한 어르신들을 편히 모셔오기 위해 순환버스형태로 운행을 하면서 좀 걱정이 되어 혹시나 하고 일괄보험을 들었는데 안전사고 없이 무사히 귀가하게 되어 정말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내년에는 좀 더 접근이 쉬운 노량공설운동장에서 경로잔치를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건의를 드렸더니 그것도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내년에도 좋은 날을 잡아서 어르신들을 모실 생각이다.

▪ 남해에는 언제 인연이 닿아 오셨는지, 화방복지원(화방동산)을 건립하신 걸로 알고 있지만 자세하게 말씀해 주신다면
=1989년에 남해를 왔으니 올해로 30년째가 됐다. 처음에는 화방사에 주지로 가게 되었다. 내가 태어난 곳은 충남 예산이다. 초등학교 때 자암 김구선생의 사당 밑에서 뛰어놀았다. 괜한 연관을 짓는다고 할지도, 과거에 얽매여 산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전생에 남해에서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곳곳이 낯설지가 않다. 나와 남해의 인연은 이미 예정돼 있었던 것 같다. 2002년 화방동산을 설립하게 된 것은 김두관 군수시절 어른들의 복지가 정립되기 전, 오갈 데 없는 어른들을 모실 기관이 전혀 없어 그들을 따뜻하게 모셔야겠다는 생각으로 화방동산을 세웠다. 이것을 지으면서 부모님의 유산이 많이 들어갔다. 그 당시 단일 사찰로 146명의 어르신을 모시다가 복지법이 좋게 시행되던 시기에 다 내려놓고 나왔다.

▪ 기왓장에 그려져 있는 매화가 돋보입니다. 스님께서도 어떤 작품 활동을 하시는지
=나는 그런 재주가 없다. 누가 준 것을 여기에 두었다. 말 나온 김에 한 마디 하고 싶다. 앞으로 문수선원에 작은 박물관을 지을 생각이다. 스님들이 주신 근대작과 근대사들이 나에게 많이 소장돼 있고 일반인들의 작품도 꽤 있어 그런 필요성을 느낀다. 갤러리를 겸한 박물관 준비를 오래전부터 해왔는데 재원만 조달되면 바로 시작할 수 있다. 한 작품만 전시하면 재미없다. 다양한 소장품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드리고 싶다.

▪ 사람들이 요즘 이름으로 삶이 달라진다는 말들이 있습니다. 스님은 그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기 온 이후 사람들이 “스님 이름 지으십니까”하여 이름을 짓게 되었다. 지금까지 1120명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름을 지을 때마다 ‘이 세상에서 건강하고 훌륭하고 더 나아가 존경받는 사람이 돼 달라’는 기도를 수없이 한다. 이름에는 글자마다 오행색깔이 있다. 예능계통에 어울리는 사주이면 거기에 비슷한 이름이 맞춰 들어간다. 20여 년 전 이름을 지을 때는 봉투에 이름‧편지‧발원문 5천원을 넣어주었고, 지금은 이름‧발원문‧편지‧3천원자리 초콜릿을 넣어준다. 요즘은 자식을 낳아 2대째 이름을 지으러 오는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자신은 5천 원짜리 군번이라는 말들을 한다. ‘나는 이름을 짓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훌륭한 성인이 나에게 이름을 내려준다는 생각을 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천 명의 이름만 지어도 성공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나는 그 수를 넘겼다. 2011년 이곳에 절을 중건한 것은 훌륭한 인물을 많이 배출하기 위해서였는데 다행히도 문항마을 32가구 중 22명의 박사가 나는 걸 보면 그 뜻이 이루어졌다는 생각도 든다.

▪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자주 해 주시는지 
=나는 사람들이 어디 사냐고 물으면 ‘청해에 산다’는 말을 하면서 행복해한다. 1년 365일 겨울에도 푸른 마늘과 시금치가 들판을 물들이고 있으니 그렇게 말을 하게 된다. 늘 만나는 사람에게 ‘잘! 되세요 자알! 되세요, 잘 될 거야! 힘내! 뭐든 잘 될 거야! 고비를 잘 넘겼네’라는 희망어를 전한다. 현숙의 노래에 ‘내 인생에 박수’라는 말이 있더라, 하루에 한 번 자신에게 잘했다고 칭찬하는 습관을 꼭 가졌으면 한다. 그리고 여기에 오셔서 차 한 잔 하면서 쌓인 피로를 풀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감인대堪忍待가 참 중요하다. 무엇이든 인스턴트 식품처럼 단박에 해결하려 하지 말고 견디는 시간들을 통해 성숙한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저 바다를 보면서 ‘참 아름답다’ 내 마음도 저렇게 넓었으면 좋겠다는 긍정성으로 언제나 희망을 찾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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