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윤고려대장경판각성지보존회 부회장
김봉윤고려대장경판각성지보존회 부회장

『중편조동오위(重編曹洞五位)』

일연선사의 일대기가 새겨진「인각사 보각국사비문」에 ‘저서는『어록(語錄)』 2권 ·『게송잡저(偈頌雜著)』 3권이 있고, 그 편수(編修)한 바로는 『중편조동오위(重編曺洞五位)』2권 ·『조파도(祖派圖)』2권 ·『대장수지록(大藏須知錄)』3권 ·『제승법수(諸乘法數)』7권 ·『조정사원(祖庭事菀)』30권 ·『선문염송사원(禪門拈頌事菀)』30권 등 백여 권이 세상에 유행(流行)하고 있다’고 새겨져 있다.

일연의 대표적인 저술인『삼국유사』는 비문의 저서목록에는 없으며, 비문에 나오는 저서 중 현재 남아있는 유일한 책이 남해에서 편찬한 『중편조동오위』이다. 이 책은 제목만 전해오다가 1970년대 초 고 민영규 연세대교수가 일본 교토대학 도서관에서 찾아서 알려지게 되었다.
이 책의 서문에 ‘1256년 윤산 길상암에서 쓰고 동료 승려가 원고가 없어질 것을 우려하여 출판하기를 청해 1260년 출판한다’고 나오며, 출판 당시 일연이 남해에 주석하고 있던 시기이기 때문에 『중편조동오위』는 남해에서 분사대장도감의 판각기능을 활용해서 판각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인각사 보각국사비문』에 ‘기유년(己酉年)에 정상국(鄭相國) 안(晏)이 남해(南海)에 있는 사제(私第)를 희사하여 절을 만들어 정림사(定林社)라 이름하고 스님을 청하여 주지로 추대하였으며, 기미년(己未年)에 이르러 대선사(大禪師)의 법계를 받았다. 중통(中統) 신유년(辛酉年)에 왕명을 받들어 서울(京)로 가서 선월사(禪月社)에 주석하면서 개당(開堂)하고 목우화상(牧牛和尙) 지눌(知訥)의 법통을 요사(遙嗣)하였다’고 나온다. 일연선사가 1249(기유년)년부터 1261년(신유년)까지 남해에 있었다는 말이다.
일연선사가 직접 쓴 중편조동오위의 서문에서 남해와 관련된 집필과 출판의 경위를 설명한 부분을 한 번 읽어보자.

▶인각사보각국사탑비(2006년 복원)
▶인각사보각국사탑비(2006년 복원)

‘마음속으로 가만히 스스로 생각하기를, 다행히 인연을 만나면 마음은 반드시 개정해야 되겠다고 하였지만 어려움 많은 세상을 만나서 평소의 뜻을 갚지 못하였다. 병진년(丙辰年, 1256) 여름을 지나면서 윤산(輪山) 길상암(吉祥庵)에 머물면서(‘越丙辰夏 寄錫輪山吉祥庵’) 한가로운 여가가 있어서 구본(舊本)의 삼가어구(三家語句)를 가지고 힘써 검토하고 열람하게 되었다. 말이 뒤섞인 것은 법문에 따라 끼워 넣고 옛 본에 의거하여 나누어서 두 책으로 만들어 어린 아이들이 찾을 때를 대비하였다. 동문의 소(素) 상인(上人)이 그것을 보고는 원고가 혹 없어질까 걱정하여 나무에 새기자는 간곡한 청이 있었다. 내가 말하기를, “좋습니다. 법수(法水)의 맑음에 의지해서 막히고 병든 무성한 풀을 한 번 씻어내는 것이 바람이니, 그대가 도모해 보시오.” 하였다’

‘중통원년(中統元年, 1260) 실침(實沈, 庚申年) 납월 8일 봉소헌(鳳笑軒)에서 회연(晦然)이 서(序)하다.(‘中統元秊 實沈臘八 遺鳳笑軒 晦然序’)’

중국 조동종(曹洞宗)의 핵심사상인 ‘오위설(五位說)’을 해석한 책을 언젠가는 개정해야겠다는 마음을 간직해왔지만 몽골의 침입, 대장경 조성 등 어려운 세상을 만나 그 뜻을 못 이루다가 1251년 대장경 판각이 마무리 되고 몽골의 공격도 잠잠해지던 시기인 1256년 여름을 지나면서 윤산(전산, 윤산, 화전은 남해의 별칭) 길상암에서 책을 쓰게 되었고, 동료 스님이 판각을 권유해 1260년 출판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 서문을 ‘봉소헌’이라는 이름의 집에서 쓰고 지은이는 ‘회연’이라고 밝혔다. 보각국사 비문에 ‘국존(國尊)의 휘는 견명(見明)이요, 자는 회연(晦然)이었으나 뒤에 일연(一然)으로 바꾸었다’고 나오기에 회연이 바로 일연이며, 저서목록에도 중편조동오위가 있음을 앞서 확인한 바 있다.
이를 알기 쉽게 풀이하면 1256년 ‘남해 길상암’에서 집필하고, 1260년 길상암에 딸린 스님의 거처인 ‘봉소헌’에서 ‘일연’이 서문을 쓰고 출판한다는 뜻이다.

▶중편조동오위
▶중편조동오위

일연의 민족의식 담긴
『중편조동오위』

중국 조동종의 조동오위설은 동산양개(洞山良介)가 제창한 편정오위설(偏正五位說)을 말하며, 동산양개의 오위에 조산본적(曹山本寂)이 해설을 추가해 조동종의 중심사상이 되었다. 일연은 이 오위설에 군신을 대비시켜 군신오위설(君臣五位說)로 설명하고 군신도합(君臣道合)의 경지를 조동선의 완성으로 해석하고 있다.
조동종과 관련된 우리나라의 종파는 수미산문(須彌山門)이라고 한다. 가지산문(迦智山門)에 속해 있었던 일연이 조동종의 핵심사상서인 ‘중편조동오위’를 편찬한 것과 사굴산문(闍崛山門)의 선풍을 일으켜 조계종을 확립한 보조지눌(牧牛子)을 지칭하며 ‘목우화상의 법통을 이었다’는 보각국사비문의 내용 등을 종합해 보면 통합과 원융의 사상을 견지한 대사상가 일연의 면모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또한『삼국유사』를 집필해 몽골에 억눌린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하고,『중편조동오위』를 통하여 군신과 국민의 단합을 강조하는 것으로 볼 때 일연의 사상에 강한 민족의식이 깔려 있음을 느낄 수가 있다.
이렇게 삼국유사 못지않게 중요한 저술인 중편조동오위의 집필지이며 출판지가 ‘남해’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리고, 일연이라는 슈퍼스타와 남해의 연관성을 다각적으로 연구하여 남해군의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개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일연의 민족의식과 대통합의 정신을 계승해나가기 위해 중편조동오위를 남해에서 다시 판각하고 인쇄해서 일연선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남해로 그 큰 뜻을 배우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분사대장도감판 경전과 서책

분사대장도감을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출판인쇄단지’이며, 당대 최고의 지성과 기술 그리고 막대한 인력과 자원, 예산이 총동원된 첨단 목판인쇄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대장경을 판각하면서 더욱 전문화된 이곳의 판각기능을 활용하여 대장경 이외의 필요한 다른 서책들도 판각을 하였다.
대장목록과 보유판목록에 들어있지는 않지만 대장경 판각이 진행 중에 있을 때와 대장경 판각을 마친 후에 분사대장도감에서 판각한 경전과 서책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천태삼대부보주(天台三大部補注)』

중국 수나라의 천태지자대사(天台智者大師) 지의(538~597)의 대표적인 3부작인 『법화현의(法華玄義)』, 『법화문구(法華文句)』, 『마하지관(摩訶止觀)』을 해설한 책으로 이론(敎)과 실천(觀)의 교관이문(敎觀二門)이 서로 합해질 때에야 비로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며, 이것이 참다운 불법이라고 한다.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동국이상국집
▶동국이상국집

고려의 대문호 이규보(李奎報, 1168 ~ 1241)의 문집으로 1241년(고종 28)에 편찬하였으며, 10년 뒤인 1251년(고종 38)에 다시 판각했다. 발문에 의하면 국왕의 명령으로 분사대장도감에서 판각하였고, 이규보의 손자인 이익배(李益培)가 교감하였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몇 안 되는 고려시대의 문집으로 대문장가 이규보의 면모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으며, 팔만대장경 판각의 경위를 설명한 「대장각판군신기고문(大藏刻板君臣祈告文)」도 동국이상국집에 수록되어 있다.
또한 이익배가 쓴 『동국이상국집』 발미(跋尾)의 ‘이제 분사도감이 대장경판각을 마치고 나서, 칙명을 받들어 이 문집을 판각하게 되었다. 나는 그 때 다행히 그 이웃 고을에서 벼슬살이를 하고 있었다. 신해년에 고려국 분사대장도감은 칙명을 받들어 판각하였다. 교감 하동군 감무관 구학사 장사랑 양온령 이익배’라는 구절에서 분사도감의 위치가 하동군의 이웃 고을인 남해에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의약서인 『향약구급방』은 조선 태종 17년(1417년)에 다시 발간한 발문에 표기된 내용을 근거로 향약구급방이 고려 고종 때 대장도감에서 처음으로 간행하였다고 한다. 정안이 의약에도 정통하여(『고려사』열전) 한의학적 소양을 갖추고 있어 향약구급방의 저자를 정안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정안과 연결시키는 것은 향후의 과제로 남겨 둘 필요가 있다는 견해(『13세기 중엽 정안의 활동과 현실인식』최영호 「석당논총(石堂論叢) 70집」2017. 9)도 있다. 정안과 관련된 서책이기에 여기에 소개한다.

■『종문척영집(宗門摭英集)』

승천유간(承天惟簡, 생몰년 미상)이 392명에 이르는 선승들의 공안(화두) 1,670개를 모아 만든 3권의 공안집으로 1051년 중국 항주에서 간행한 책이다. 이 책에 수록된 선승은 운문종 출신이 가장 많고『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과『천성광등록(天聖廣燈錄)』에 볼 수 없는 문답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중첨족본선원청규(重添足本禪苑淸規)』

승려들이 총림과 선원에서 지켜야 할 법규를 청규(淸規)라고 하는데, 중국 송나라의 청규를 참고로 하여 1254년에 만든 고려의 선원청규로 사찰 내에서의 의례와 일상생활에 대해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주심부(注心賦)』

중국 당나라 말과 오대에서 북송 초에 걸쳐 활동한 영명연수(永明延壽 904~975)의 저서로 심부주(心賦注)로도 불리며 ‘마음의 노래를 해설한다’는 뜻이다. 일심(一心), 유심(唯心) 등 초기선종의 사상을 근간으로 화엄, 법화, 유식, 중관, 능엄, 열반, 정토, 밀교 등 전체 불교사상의 근본진리를 설명하고 있다. ‘분사남해대장도감’의 간가가 새겨진『종경록』100권의 분량이 워낙 방대하고 어려워 이를 대중화하기 위해 4권으로 줄여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분사대장도감의 판각활동

지난주에 이어 분사대장도감의 판각본 중 많이 알려진 경전과 서책들을 살펴보았다.『종경록』을 제외한 분사대장도감판이 남해에서 판각되었다는 확실한 물증은 없지만 해인사에 보관된 8만장이 넘는 대장경판 중에 판각장소를 새겨놓은 것은 단 한 장에 단 한 곳뿐인 ‘남해’가 유일하다. 분사대장도감이 곧 분사남해대장도감을 뜻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할 것이다. 나아가 분사대장도감판과 함께 대장도감판도 남해에서 전량 판각했다고 주장하는 학설도 발표되었다.
해인사 대장경판을 전수 조사한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이 경판에 있는 각수의 이름과 경전별, 판각연도별, 판각장소별로 간기를 비교분석해본 결과 하나의 경전을, 같은 시기에, 양 도감에서, 동일한 각수가 새긴 것들이 확인 되었다. 대장도감판과 분사대장도감판이 동일한 장소에서 판각되었다는 것이다.

▶판각체험교실
▶판각체험교실

또한 전체 6,570권으로 구성된 대장경판 중 분사대장도감판은 500권으로 그 중 470권이 간기에 ‘대장도감’이라는 글자부분을 도려내고 ‘분사대장도감’이라고 고쳐 새긴 나무판을 끼워 넣었음이 밝혀졌다. 이는 대장도감과 분사대장도감이 한 곳에 있었음을 의미하며, ‘고려국분사대장도감’이라는 기구가 ‘고려국 분사대장도감’이 아니라 ‘고려국분사 대장도감’이며, 처음부터 대장도감을 설치, 운영하기 위한 고려국의 분사를 남해에 두었다는 주장이다.
대장경 판각지와 분사대장도감을 둘러싼 다양한 학설들이 전개되었지만 모든 논의의 중심에는 ‘남해’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대장경을 남해에서 판각했다는 사실에 대해 다른 견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경판 자체에 남해에서 만들었다고 지문처럼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분사남해대장도감’을 복원하여 새로운 역사의 경판에 남해의 희망과 꿈을 새겨나가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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