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 박정규 시인은 1960년 이어마을에서 태어나 타지에서 4년을 생활한 것 외에는 지금까지 남해를 지키며 꾸준히 시를 생산해 내는 남해의 대표 시인이다. 
2003년 계간 리토피아에 신인상으로 등단하여 2003년 첫 시집 ‘탈춤 추는 사람들’ 2011년 두 번째 시집 ‘검은 땅을 꿈꾸다’에 이어 이번에 세 번째 시집 ‘내 고향 남해’를 출간하게 되었다. 박 시인은 2000년 농협상무로 퇴직했고 2008년 (주)초원환경 전무로 퇴직한 이력이 있다. 현재 리토피아문학회 회원이고 이어농어촌체험휴양마을 사무국장을 역임하고 있다. 참고로 오는 9일 오후1시 유배문학관 다목적실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질 예정이다.

박 시인은 “자신이 의도치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운명처럼 8년마다 시집을 발간하게 되어 마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했다. 
첫 시집은 세상사에 많은 심적 반응을 일으키며 동반 낙하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마음 다독이는 방편으로 시를 진정제로 생산해 냈다. 의아한 현대사회를 접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사건들에 차츰 길들여져 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절박감에서 새벽을 기도하는 시를 썼음을 시인의 말에서 밝혔다. 
두 번째 시집에서는, 갈수록 시 쓰기가 두렵고 겁나는 것이 나이의 흐름과는 비례하지 않는다. 우주와 자연의 섭리에 순종하는 것이 진리이듯 만물은 싹이 돋고 줄기가 나고 잎이 푸르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아직도 흘러갈 길이 멀다. 하루하루 열심히 굵어지고 맑아지며 세상 모든 걸 사랑하면서 흩어지겠다는 시인의 진솔한 말을 만날 수 있다. 
세 번째 시집인 ‘내 고향 남해’에 남긴 시인의 말은 시적 표현으로 간결하지만 오랫동안 마음을 잡아당긴다. 

파란 하늘/파란 들판/파란 바다/세상이 온통 파란 색맹입니다/세상은 무겁고도 가볍고 울기도 웃기도 합니다/한 아름 파랗게 담고/함께 버무려 비빔밥처럼 살아가는 파란 색맹의 세상/파란 공기/파란 시야/파란 냄새/세상이 온통 덤인 이곳 보물섬 ‘내 고향 남해’/청정갯벌에서/바지락, 바지락 노래하며 지상의 온갖 매연을 피합니다/20여 년 동안 3권의 시집을 엮어내는 지금까지도/여전히 파란 세상만을 꿈꾸며/갯바위에 앉아 님들의 웃음을 응원합니다//

이 시집의 목차를 들여다보면 제1부 ‘내 고향 남해’에는 20편의 시가, 제2부 ‘남해12경’에는 12편의 시와 에필로그-파구맨이, 제3부 ‘우리 집 닭은 어머니다’에는 24편의 시가, 제4부 ‘지천명과 이순 사이’에는 21편의 시가 수록되어 모두 77편으로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시평을 쓴 백인덕 시인은 “항심恒心과 애향심이 하나로 가 닿는 곳” -박정규의 ‘남해를 읽다’에서  시는 아무리 작은 소리일지라도 자기 울림을 갖는다. 한국 현대시의 한 사표인 김수영 시인은 한여름 밤의 모기 목소리처럼 작아도 끝내 윙윙거리면 한 사건을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시가 꼭 무언가를 결과나 결실로 겨낭해서 하는 작업은 아니지만 그 행위의 지향과 순도는 거의 틀림없이 정신적 가치의 높은 결과를 예견할 수 있게 한다. 박정규 시인은 우직하다. 시를 존재의 근거 자기회의와 아픔의 근원에서 시작하지만 가야할 곳과 거기에 닿는 과정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자세를 통해 오히려 그 목표를 스스로 만들어낸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지만 현대인은 무조건 빠르기만을 강요하는 속도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지금 여기 멈춰서 있는 것을 마치 죽음처럼 생각하면서 자기존재를 담을 수조차 없는 미분화된 시-공간의 변화에 삶을 의탁해 버린다고 했다. 이 시집의 대표작인 내 고향 남해를 옮겨본다.

내 고향 남해

할머니 얼굴 주름살 골을 타고 달려온 버스가/마중 나온 산모퉁이를 돌아서니/싸한 바다냄새 비늘처럼 일어나 차창을 두드린다/산허리까지 올라선 다랑이들 가슴에/노니는 물안개가 도솔천 대문을 지키고 있다/파릇파릇 마늘 농심 꿈으로 키우는 동면 잊은 다랑이들/대장군 여장군 우뚝 서 있는 남해대교 두 팔 뻗어 반기고/방파제 깨우는 파도 거품 위를 비상하는 갈매기들/통통 고깃배 넘나드는 해전포구 노량바다 거북선 지킴이~(중략)/버스는 꼬불꼬불 시간 속을 달리건만/차창 밖 어린 세월은 새치만큼씩 마을 안을 키운다/아, 언제나 안기고픈 비릿한 흙냄새 마늘향기/토끼반도 남쪽 바다 한려공원 중심에서/청정해역 출렁이는 내 고향 남해//   
그는 또한 이번 시집을 읽으며 수구초심首丘初心과 수처작주隨處作主의 자세란 무엇인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생명은 그 무엇이든 자기의 난 곳을 본질적으로 애타게 그리워하지만 또한 자기가 앉은 자리에서 주인처럼 자기본위로 살고자 하는 본성이 내재돼 있다. 그래서 늘 떠나고 돌아오는 행위를 측은하게 또는 얼마간 안쓰럽게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지금 현실이 가속화하고 있는 이런 현상에 대해 침묵하기보다는 모기만한 소리일지라도 자기를 말함으로써 다시 생각할 계기를 마련하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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