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 / 명상디자인학교 교장
박철 / 명상디자인학교 교장

만파식적(萬波息笛)은 신라 시대의 전설로 내려오는 신비의 대금입니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만파식적을 불기만 하면 백성의 근심 걱정이 사라지게 된다는 설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예악(藝樂)이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는 점에서 예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높다는 것을 일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성정은 오감의 기운 따라 생각과 감정의 뉘앙스가 달라집니다. 보는 것, 듣는 것, 맛보는 것, 냄새와 촉감에 따라 마음의 용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심기가 불편해지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기분이 좋아지기도 합니다. 마음이란 이처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데 이러한 감정이 편파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둘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이런 점에서 심기를 안정적으로 다스릴 장르로서 예술의 비중을 가장 높이 두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종교가 있기는 하나 예술은 종교에 버금갈 정도로 오감을 깨우칠 감성력이 탁월합니다. 이른바 성정을 바르게 한다, 아름다움을 느낀다, 조화와 균형으로 덕을 창안한다는 미와 예와 덕이야말로 삶의 질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감을 즐겁게 할 예악이 우리 고장 남해에서는 얼마나 실감 나게 펼쳐지고 있을까요? 종종 우리는 군민이 함께하는 축제의 자리에 예악이 넘실거리고 관광 명소에 넘쳐나는 인파를 문화공간으로 유도할 여력을 눈여겨보기도 합니다. 남해를 아름답게 할 거리의 악사, 풍경 화가의 인상, 명상과 심신 이완, 스토리텔링, 이미지 디자인, 아름다운 정원, 예술마을이 풍겨 낼 미학은 여전히 담아야 할 예악이 아닐까요. 때마침 얼마 전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 남해군 지부가 창립되었습니다. 문화 융성의 잣대는 관심과 지원 그리고 적극적인 참여로부터 시작됩니다. 이러한 점에서 남해군 또한 외형의 정책 못지않게 내면을 풍요롭게 할 정신영역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예악은 우리가 느낄 예감보다 훨씬 광대하게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기에 이를 획기적 발상으로 인지할 용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내면을 다스릴 가치에서 예술 전반을 한층 더 조직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삶은 결코 척박해서도 안 되고 이윤추구를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모습이 전부가 되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작고 섬세한 것의 위대함, 조화와 균형의 미, 밝음과 어두움의 대비, 중도와 중심으로 내면을 다스릴 방편에서 예악만큼 중요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혹자는 농어업 일로 바쁜 데 한가하게 예악에 관심을 두거나 감상할 여유가 어디 있냐고 일갈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면과 외면을 아우를 감각은 예악의 감성을 고루 담아낼 잠재력이 있기에 누구라도 펼칠 수 있는 영역입니다. 아무리 무딘 감각일지라도 옷가게에서 옷감을 고를 때면 전문가 못지않은 감성을 발휘하곤 합니다. 떠오르거나 지는 해의 아름다운 장면을 바라보며 감탄사를 연발하는 찰나에 이미 예와 악의 감각이 발현되는 순간입니다. 어제와는 다른 좀 더 새로운 감각으로 연출하거나 색상을 조율하는 면면은 누구라도 지니고 있는 감각 영식이기에 모두가 예술가가 될 소지가 있는 것입니다. 비록 표현 감각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온종일 비치는 따스한 햇살에 시선을 두어 보십시오. 누구라도 한층 부드러운 감광(感光)에 경이로움과 행복감을 느낄 것입니다. 청각을 통하여 들리는 자연의 소리 또한 심신을 청명하게 함은 물론 에너지 파동은 공명으로 마음을 편안하게 조율할 것입니다. 이런 기류를 번외로 분류하거나 생활 속에 반영할 예악의 가치를 관심 밖에 두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섬세하다는 것, 감성을 담아낸다는 것의 가치는 대단히 위대합니다.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면서 만파식적의 아름다움처럼 성사시켜 나아간다면 남해 예술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예술은 특별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라 참여하기만 하면 누구나 다 예악의 성정이 절정에 이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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