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
-이상미-
비상구도 없는
암흑속에서
까맣게 질려 죽은
어느 사내의
역력한
고뇌의
흔적
-시작노트-
굳이 구도자가 아니더라도
살면서 고뇌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어른으로 살아가면서 더 가중되어지는 현실,
스스로 안식처가 없다고 느껴질때면 어릴적 서성이던
뒷뜰의 작은 호두나무를 떠올리곤 했다.
달빛이 마당 가득 했던 밤.
무엇때문에 날을 지새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처연하게 서 있던 어린나무 한 그루 위로
비밀스런 바람이 지나가고 그 후로 몇해를
숨어 지켜보면서 나도 그처럼 바람속에 익어 갔다.
세상을 다 듣고 볼수 있다면 아름답게 익어질 수 없다는 것을
묵묵히 기억속에서 일러주던 나무.
다 익은 다음에야 비로소 너의 고뇌가 별빛이었음을
새삼 짧은 시한편으로 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