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사항 이행요구, 국적포기는 무책임한 주장

최근 남해군이 밝힌 미국마을 조성사업에 대해 선행 사업지인 독일마을 주민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남해군은 2000년 시작된 독일마을 조성에 이어 미국교포들의 정착촌인 미국마을을 이동면 용소에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군은 미국마을이 또 하나의 외국인 특구마을로 인구 증대와 관광자원 개발을 통한 수익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남해군의 이런 기대와 달리 독일마을에 거주하는 교포들은 ‘독일마을처럼 하면 미국이 아닌 어떤 마을을 해도 실패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했다.

현재 독일마을 주민들은 남해군의 독일마을 사업을 ‘실패작’이라고 단정짓고 있다. 독일마을번영회 이승준 회장은 “지금이라도 군이 전매제한조건을 풀어준다면 당장 집을 팔고 떠나고 싶은 심정”이라며 “지금은 독일마을이 아니라 ‘민박마을’이라 할 만큼 애초 목적과 달리 엉망”이라며 행정을 비난했다. 

독일마을 조성사업은 실패라고 주장하는 주민들은 그 원인을 행정의 무책임과 무관심이라고 입을 모았다. 주민들은 애초 군이 독일현지설명회에서 약속했던 사항 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며 행정의 무책임함을 질타했다.

주민들은 군이 미국마을 입주조건으로 내세우는 ‘국적포기’ 문제도 무조건 고집하지 말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입주 교포 대부분이 독일국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주민들은 국적유지 이유에 대해 경제적 이유를 들었다.

번영회 석숙자 총무는 “독일과 같은 무상의료제도 등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서 무조건 국적을 포기하라는 것은 청춘을 타국에서 고생한 우리에게 늙어서 조국에서 다시 고생하라는 억지”라며 대책마련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하영제 군수의 강력한 의지가 담긴 미국마을 조성사업. 하지만 그 성공조건에 ‘독일마을 성공적 마무리’라는 시급한 숙제가 남아있다.  

<독일마을주민들 왜 미국마을사업 우려하나>
독일마을처럼 한다면 어떤 사업도 성공 못해

독일마을 주민들이 미국마을 조성사업에 우려를 나타내는 가장 큰 이유는 행정의 일관성 부족과 무책임에 있다.
독일마을 조성사업은 애초 민선 2기 김두관 군수 시절 기획됐다. 하지만 택지조성, 주택건축, 기반시설 등은 민선 3기 하영제 군수 취임에서야 본격 시작됐다.

문제는 남해군이 유치 시점인 2001년에 독일현지설명회에서 교포들에게 약속한 사항을 이제 와서 예산부족 등의 이유로 이행하지 않으면서 불만이 불거졌다.

군은 실제 당시 설명회에서 교포들에게 호텔, 교회, 식당 등 민자유치뿐만 아니라 독일공원, 시장, 슈퍼 등을 자체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주민들은 하군수가 독일마을이 김두관 전군수의 치적이라는 이유로 취임 후 지금까지 외면해 왔다며 불신의 벽을 세웠다.

마을번영회 이승준 회장은 “우리가 남해로 온 것은 김두관 전군수를 보고 온 것이 아니다. 독일마을 사업 주체는 독일교포와 남해군이다. 그런데 군수가 바뀌자 약속했던 사업들이 추진되지 않고 있다. 만약 미국마을 입주희망 교포들이 이런 내용들을 안다면 어느 누가 남해군을 믿고 오려고 하겠느냐”며 군을 질타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본격적으로 입주를 시작한 지난해부터 독일마을은 애초 교포들의 노후를 보내는 곳이 아니라 투기와 민박전문 단지로 전락해 버렸다고 한다. 현재 독일마을에 입주해 있는 10여 가구 중 2∼3 가구를 제외하면 대부분 민박을 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주택을 임대해 민박을 사업적으로 하는 이들이 생기면서 주민들간에 분란이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입주자들과 남해군간에 체결했던 매매계약서에 ‘주거용’으로만 한다는 조항이 있음에도 남해군이 일부 주민에게 민박업을 허가해주면서 주민들은 이제 독일마을이 아니라 ‘민박마을’이라고 한탄했다.

주민들은 주말이면 관광객들로 인해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을 만큼 불편을 겪고 있는데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을 뿐이라며 차라리 ‘10년 이내 전매제한조건’을 풀어서 나갈 사람은 나가고 전문 민박촌으로 육성하라고 주장했다.

일관성 없는 행정에 교포들 서운함 넘어 불신까지
‘국적포기 고집 보다 현실적 이익 고민해야’ 충고


국적포기에 대해서도 주민들은 현실성 없는 주장이라는 입장이다. 군은 인구 증대책의 일환으로 미국국적포기 후 한국국적 취득 그리고 남해로 주소지 등록을 입주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 국적포기 교포들이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

얼마 전 독일마을에서 열린 독일어캠프에 찾아온 하군수가 교포들에게 인구증대를 위해 국적을 포기하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주민들은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우춘자 부회장은 “얼마 전 몸이 불편해 서울의 한 병원에서 검사를 했는데 비용이 100여만원이 넘게 들었다. 대부분 의료혜택을 계속 받아야 하는 노인들인데 의료비가 전액 무상인 독일에서라면 모르지만 한 달에 연금 150만원이 수익의 전부인 우리가 한국에서 살아가기란 불가능하다”며 “국적포기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이라도 내놓는다면 모를까 아무런 대책없이 국적포기를 요구하는 것은 억지”라며 미국마을 또한 같은 현실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특히 20여 가구를 조성한다는 미국마을에서 국적포기가 인구증대에 얼마만큼 도움이 되겠느냐 차라리 현실적인 이익을 고민하라고 충고했다.

여기에다 최근 군이 미국마을 조성사업을 밝히면서 독일마을에 대해 깎아 내리기식 주장을 계속하자 주민들의 불만은 노골화되고 있다. 주민들은 군의 주장에 대해 ‘우리가 남해에 와서 도움을 주었지 손해본 것이 뭐가 있느냐’고 반발하고 있다.

한 주민은 “애초 남해군이 독일마을 사업목적에 인구증대라는 것은 밝히지도 않았다. 경제적 도움이 없다하는데 우리가 남해에서 연금으로 받는 돈을 거의 사용하고 재산세, 자동차세 등 웬만한 세금은 다 내고 있다. 그리고 독일마을 조성 후 관광객들이 얼마나 많이 오느냐”며 “젊어서 타국에서 온갖 설움과 무시를 받으면서 살다가 나이 들어 조국에서 그나마 편히 여생을 보내려 남해로 왔는데 여기에서조차 무관심과 무시를 당하고 있다”며 군의 무관심한 자세에 서운함을 나타냈다.

물론 일부 주민들은 자신들도 애초 남해군과의 약속과 달리 입주가 늦어지면서 정착촌이라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스스로 잘못을 지적했다. 한 주민은 “분양을 받은 40여 교포들이 하루빨리 입주하면서 제대로 된 정착촌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입주가 지연되고 있다”며 “그렇게 돼야 우리도 어엿한 한 마을로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지금이라도 독일마을을 제대로 마무리해 주길 바라고 있다. 또한 그것이 미국마을 조성사업을 성공하기 위한 우선 과제라는 것이다. 주민들은 독일마을이나 미국마을은 남해군이 국제적인 약속을 하는 사업으로 선행사업에서 문제가 있는데도 그것을 해결하지 않고 또 다른 사업을 벌이는 것은 책임있는 행정의 모습이 아니라며 자칫 국제적 망신만 당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연 남해군과 하군수가 독일마을 주민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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