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 ‘남해향우회’ 카페를 열면서 처음 시도한 것이 매주 산행이었다.

재경 남해읍 향우회에서 가을산행을 계획했던 터라 관악산에서 첫 산행을 시작했다.

읍향우회 중심으로 했던 산행을 지양하고 향우들은 누구나 산행에 참석할 수 있도록 했는데 벌써 그 산행은 일년 이상 이어지고 있다.

매주 향우님들과 산을 다니다 보니 건강도 다지고 고향을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계절마다 산이 주는 매력 때문에 단 한 주도 산행에 빠질 수 없었다.

처음에는 옛골-매봉-옛골로 내려오는 밋밋한 산행 계속했다.

청계산은 초보자인 나에게 넉넉한 품을 아낌없이 내 주었기에 부담없이 다닐 수가 있었다.

관악산, 예봉산, 검단산, 북한산 등으로 산행의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자.

막연하나마 ‘불수사도북’에 대한 동경심을 갖게 되었다.

‘불수사도북’이란 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 이 다섯 산을 말하는데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루에 45키로를 종주하는 것이다.

산행 대장님의 철저한 사전답사 후 산행후기를 올릴 때마다 가슴 벅찬 감동으로 다가왔지만

나에게 ‘불수사도북‘이란 하나의 경외감이었다.

진정한 산사람들이 하루에 종주한다는 코스를 3회에 걸쳐 하기로 했다.


 굵은 비가 내리고 난후 구름 한 점 없는 가시거리가 좋은 날 눈앞에 빛나게 다가온 저 산들...

언제나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았을 뿐 감히 근접하기 힘든 산인데

불수사도북 중 ‘불수(불암산, 수락산)’종주를 한다는 공지에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첫 종주 코스는 16키로...언제나 우러러보기만 했던 저 산이 나를 받아줄까?

산을 알려면 산의 품속으로 안겨봐야한다기에 용기를 내어 동참하기로 했다.

7월의 무더위와 더불어 긴 거리를 종주 한다는 것은 용기보다는 객기에 가까웠다.

그러나 언제가 저 산의 품에 안겨본다면 지금이 기회일 거 같았다.

호젓한 숲길과 능선을 따라 걷다가 커다란 바위에 올라서서 온 몸으로 안기는 바람에

 더위를 씻고나면 다시 힘들었던 걸음을 가볍게 뗄 수 있었다.

불암산, 수락산정상에서 도심을 풍경을 보며 다음 산행을 다짐했다.


가마솥더위다. 34도까지 오른 무른 날씨라 더 덥게 느껴졌다.

걸음을 옮기기도 전에 온몸에 땀방울 맺히기가 무섭게 타고 내렸다.

이 무더위와 맞서서 잘 갈 수 있을까? 가기도 전에 후회가 앞섰다.

돌아설 생각은 애당초 없었기에 연신 땀을 닦아가며 걸음을 옮겼다.

이번 2차 사도(사패산, 도봉산) 종주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물과 바람뿐이었다.

숨이 막혀오고 어지러웠지만 포기는 없다.

그냥 발아래만 온신경을 집중하여 걷다보니 머리는ㅜ비워져 오히러 개운해졌다.

더위가 발목을 붙잡았지만 서로를 격려하며 산행은 계속되었다.

도봉산의 정상인 만장대에 올랐을 때는 허기져서 거의 탈진 상태였지만

물 한모금으로 갈증만 해결하고 Y협곡을 지나야했다.

간신히 한사람만 빠져나갈 수 있는 곳, 쇠줄 하나에 목숨을 의지한 채 아찔한 가슴을 졸이며 자신과의 싸움을 했다.

곡예 하듯 Y협곡을 빠져나와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니 세상은 모두 내 것 같았다.

최악의 힘들었던 산행도 돌아서면 행복함으로 다가왔다.

사패산 정상에서 더위와 갈증을 한줄기 바람에 다 날려 보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우리가 지나왔던 길을 새삼 더듬어 볼 수 있는데

안개가 힘들었던 그 길을 아련하게 만들었다.

높은 자리에 서 보면 더 넓고 깊음으로 볼 수 있었던 산행!

아름다운 풍경을 더 살찌우는 것은 바람과 안개였다.

그 풍경 뒤에 자리 잡은 애틋함,

바위의 작은 틈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가지는 손잡이가 되고 뿌리는 사람들의 디딤돌이 되어 대패질한 거처럼 나무결의 반질거림을 볼 때 가슴이 시려왔다.

진정으로 우리에게 고마운 것들이 아닐까? 겨우 하산 길에서 그 고마움을 알았으니......

불편함도 무더위도 나를 찾고 나를 인내하는 좋은 경험이다.

초록 바람 따라 밀려가는 안개 사이로 내가 지나온 길을 볼 때

짧은 탄성과 아울러 마음은 한없이 평화로워졌다.


내친김에 7월의 마지막 날 3차 종주(북한산)의 한몫을 날씨가 해줄 정도로 좋았다.

입속에서 터지는 박하사탕의 여운처럼 북한산 종주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기분이 상쾌해졌다.

북한산의 정상 백운대의 마당 바위에 앉아서 좌우 인수봉과 만경대를 바라보는 벅찬 떨림이란.....

인수봉, 백운대, 만경대를 일컬어 삼각산이라 했다.

백운대를 뒤로하고 찾았던 계곡 ,지친 다리를 쉬게 했고 시장기를 채워주었다.

하늘 가린 초록 터널은 몸과 마음까지 맑게 해주었고 시원스런 물소리는 벅찬 감동을 선사하여 마음까지 흠뻑 적셨다.

나뭇잎 새로 비치는 여름 햇살이 따갑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숲이 주는 청량감 때문이리라

잠시 꿀맛같은 단잠을 취한 후 비봉을 향해 걸었다.

진흥왕 순수비가 있는 비봉을 올라 가슴 가득 역사를 안아보고 자일을 타고 비봉을 내려오던 길 결코 잊을 수 없다.

산을 쳐다만 보고 산으로 들어서지 않는 자에겐 결코 자신의 속내를 잘 보여주질 않는다는 걸 조금씩 알게되었다.

진정 마음으로 다가가보니 자신의 모든 걸 다주고 감추는 법이 없었던 산들,

늘 가까이 있어 보는 것으로 족했던 아득한 산들이

이제는 가슴 내주고 기대게 해주는 어머니 품 같아 7월을 보내면서 행복하게 걸을 수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한 시간 이내에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이 산들을 있다는 것이 크나큰 축복이 아닐까 싶다.

삼복더위에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산을 들어서서 그 산과 하나가 되는 것이 더위를 이기는 최선의 방법임을 이번 ‘불수사도북’의 종주를 통해 깨달았다.

속 깊은 친구 같은 산들을 이제는 사랑으로 다가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온몸을 누르는 고단함과 지루함도 어쩜 한낱 행복한 호사란 생각이 들었다.

매번 꼴찌였지만 종주한 것은 틀림없는 일이기에 그 기쁨이란...

너무 행복해서 밤늦도록 잠들 수 없었던 7월의 마지막 날은 그렇게 저물었다.

무엇보다도 안전산행을 할 수 있게 해준 산행대장과 일행들께 감사를 드린다.

아울러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가족에게 사랑을 전하고 싶다.


오행순(남해읍 북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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