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남해의 소식은 남해신문으로부터! 고향을 떠나온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남해신문을 접하므로 고향의 군정에서부터 한 집안의 경조사까지 여러 소식을 읽고 알게 된다. 한동안 구독료를 제때 납부하지 못한 이유인지 소식을 들을 수 없었으나 두 달 전부터 다시 찾아온 신문을 구독하게 되어 새로운 밝은 세상을 만난 기분이다. 요즈음 1면기사로 골프장부지 헐값 매각 특혜 논란(7월 8일자), 위원회 중복참여 심각하다(7월 1일자), 농협합병 난항(6월 24일자), 군수와 손발 너무 안 맞는다와 국도 19호선 공사 지역민 갈등으로 주춤(6월 3일자), 등을 읽게 된다. 신문은 한결같이 첫 1면기사는 잘 안되는 일만 차지해야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왕이면 좋은 내용을 담은 기사가 맨 앞자리를 차지하면 남해사람들의 마음을 밝게 할 것이며, 마음이 밝아지면 그날의 하루가 즐거워 질 것으로 믿어진다.

 

어린시절 진목초등학교(설천면 소재, 현재 폐교) 6년 동안 봄과 가을 소풍은 대국산(학교 뒷산으로 왜란 때 축성했다는 대국성이 있음, 375m)으로부터 시작하여 화방사와 망운암(망운산, 786m)을, 그리고 중학생이 되면서 보리암(금산, 701m) 이나 용문사(호구산, 618m)를 다녀오는 것이 학교의 전통적인 행사였던 것 같았다. 그 때로부터 40여년이 지난 어느 해 음력설을 지내고 모처럼 고향집에서 하룻밤 묵은 뒤, 산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망운산 등산을 하게 되었다.  화방사 밑에 차를 세워두고 한시간 여 오르니 자그마한 암자, 그러나 지도에는 나오지 않는 망운암(현재는 필자가 지인(知人)인 저자에게 간곡히 요청하여 관광 명승 고찰로 표시된 책도 있음)에 들어서게 되었다. 

 

산사의 적막함을 깨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했는데도 어느새 기척을 느끼신 성각스님께서 나오시어 맞아주셨고, 그것이 스님과의 첫 인연이었다. 저와 같은 중생들은 업의 힘으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업의 힘은 욕망의 힘 일 것이며, 욕망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은 결국 욕망의 영원한 추구와 개인의 서로 다른 욕망들이 충돌하면서 세상은 이른바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 싹트고 성장하는 그러한 장일 것이다.

 

이 욕망의 근저에는 항상 '내'가 자리 잡고 있으며, 나의 욕망이지, 남을 위한 욕망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욕망을 버리고 욕망을 초월하는 것은 󰡒나를 버리는 일이 될 것이며, 무아가 되는 것이고 공(空)이 되는 것이다. 무아가 되고 공이 된 스님들과 욕망의 힘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사이에는 무엇인가 모르지만 연결고리가 만들어져 있으며, 남해에서 제일 높은 산의 망운암과 화방사, 두 번째 높은 금산의 보리암, 세 번째 용문사가 그 연결고리의 좋은 예일 것이다. 이 사찰들은 남해인들의 정신과 기(氣)가 스며들어 있으며 남해가 자랑할 수 있는 명당중의 명당, 도량중의 으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남해라는 공기 맑고 물 좋은 대자연속에는 보광불토(普光佛土)가 있었기에 초등학교 시절부터 좋은 날을 택하여 그곳에서 자연공부를 하게 된 점은 정말로 자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어린시절 자갈길(요즈음은 차도 또는 임도와 등산로가 구분되어 있는지 잘 모르지만)을 하루 종일 걸어도 마냥 즐겁기만 했던 소풍체험이 오늘날 나의 건강의 기초가 되었으며 산사를 찾는 첫 시작이었던 것 같다.

 

한달 전에 망운암 중창불사 회향에 따른 보광전(普光殿), 요사채 낙성과 삼존불 봉안 대법회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남해인들과 남해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남해에서 가장 높은 망운산, 금산, 호구산 등산으로 육체적 또는 정신적 건강을 다지면서 종종 스님들의 법문을 통하여 나의 욕망을 버리는 공부를 부탁드린다.

 

우리들 남해인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 건강하고 개인 욕심 없이 남해에 대한 욕심만, 즉 사랑만 가득하다면 남해는 머지 않는 장래에 향상 좋은 일만 있을 것으로 믿어지며, 남해신문도 좋은 소식만 전할 수 있게 되어 객지에서 살고 있는 남해인까지도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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