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 ‘높은데 올라야 더 잘 보인다’는 뜻으로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것과 일치한다는 의미이다. 멀리 시야를 넓히려면 고층으로 올라야 하는데, ‘호박돌 하나의 높이만 올라도 천리(千里)가 더 보인다’고 했다.
‘갱상일루’의 출전(出典)은 중국의 시인 왕지환(王之煥)이 관작루(鶴雀樓)에 올라서 감흥에 젖어 명품시(名品詩)를 남겼는데, 즉 ‘관작루에 오르다(登鶴雀樓)’이다. 왕지환은 이 시에서 천리를 더 내다보기 위해, 한 층을 오르려는 심정과 의지를 표현했다. 
“붉은 해는 산(山)을 의지해 다하고, 누런 강은 바다로 들어가 흐르는데, 천리 더 멀리 바라보고자, 다시 더 한 층을 올라가네”.
관작루는 중국 섬서성에 있는 누각으로 3층 건물이다. 누각에 오른 선비는 붉은 해가 산에 기대어 지고, 긴 황하강이 끝없이 흘러가는 것을 시야에 두고 있다. 누런 황하가 바다로 들어가고자 흐른다는데, 섬서성에서 어찌 바다가 보이겠는가? 황해까지 수 천리 먼 길인데 말이다. 상상을 하는 것이다. 이 강물이 바다까지 갈 것이라고, 이렇게 광활한 풍경을 조망하는 선비는 한층 더 누각을 올라가 본다. 왜? 천리 더 멀리 보고 싶기에, 천리 바깥의 풍경까지 바라보고 싶어서 그렇다.
누각 1구와 2구는 2층에서 바라본 풍경, 2층에서 이미 유장한 풍경을 담아두고 있지만, 선비는 천리 먼 풍경까지 보고 싶어 한층 더 누각을 올라가 3층으로 가는데, 거기서도 그는 만족하지 않는다. 더 멀리 보고자 한 층서 올라서는 선비의 모습. 거기에는 끝없는 성장의 의지와 기상이 엿보이며, 학문을 하는 사람의 자세, 군자란 인물이 지닌 마음가짐과 몸가짐의 그 자세는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이기도 하고, 삶을 살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며 인간의 길, 인간도(人間道) 그 자체가 아닐 런지?
순자(荀子)는 절름발이 자라가 천리를 간다고 했다. 꾸준히 노력하고 공부하면 누구든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중국은 장강(長江:揚子江)을 강(江)이라 하고, 황화(黃河)를 하(河)라고 부른다. 장강은 중국 대륙을 관통하는 긴 강이며, 황하는 섬서성으로부터 협곡을 따라 발해만으로 흐른다. 물 한 되(升)에 진흙 여섯 되라고 할 정도로 황토벌이 흐르고 있다. 또한 중국에는 4대 명품 누각이 있는데, 황학루, 악양루, 등왕각, ‘갱상일루’의 배경인 관작루이다. 이 중 3개는 장강에 있고 관작루만 황하에 있다. 원래 관작루는 3층이었는데 황하가 범람하여 사라진 후, 송(宋)대에 와서 9층으로 재건했으며, 관작루 명칭은 두루미와 참새가 서식해서 지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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