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성룡의 아저씨 류치숙과 일본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경북 안동 땅에 류치숙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치숙은 바보 아저씨라는 뜻으로 임진왜란 때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천거한 류성룡 대감의 아저씨였다.
류성룡 대감은 한양에서 벼슬을 살면서 때때로 고향 안동에 내려왔다. 하루는 치숙이 아침 일찍 사람을 피하여 대감을 찾아왔다. 눈꼽이 끼고 코에 맑은 물이 자르르 흘렀다. 대감은 아침상을 준비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 아저씨는 아침상은 그만 두고 바둑이나 한 판 두자고 하였다. 대감으로서는 내키지 않은 일이었다. 대감의 바둑 실력은 세상이 알아주는 국수였던 것이다. 거절하지 못하여 한 판을 두게 되었다.
바둑돌이 한 점 한 점 놓여지면서 대감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반판도 채 못 되어서 대감의 돌이 모두 죽어버렸다. 그제야 대감은 치숙이 예사 사람이 아닌 줄 알고,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숙질간에 반평생을 속이고 사셨으니, 이 무슨 일이십니까? 제가 비록 어리석으오나 부디 가르쳐 주십시오.”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으니 내 무엇을 가르치겠는가. 다만 모레 저녁에 어떤 중이 하나 올 것이네. 집에 재워주지 말고 뒷산에 있는 암자로 올려 보내게.”
치숙은 아침도 먹지 않고 바삐 일어섰다. 대감이 맨발로 뛰어나가 붙잡으니 다시 말하였다.
“내 말을 잊지 말게.”
말을 끝내고는 총총이 문 밖으로 사라졌다.
과연 그날이 되니 중이 한명 찾아왔다. 중은 예의가 바르고 말을 잘하였다. 저녁이 되니 과연 치숙의 말대로 하룻밤을 재워 달라고 했다.
“집에 흉한 일이 있어 재워 줄 수 없소.”
“얘들아, 스님을 암자로 모시도록 하여라.”
암자의 거사가 중을 반가이 맞이하였다.
“오늘 무슨 바람이 불어 귀한 스님께서 이 누추한 곳을 오셨는지요.”
사당 할미를 시켜 술을 내오게 하였다.
“거사께서 담은 술이 어쩌면 맛이 이렇게 좋습니까?”
거사와 중은 술을 주고받았다. 밤이 늦도록 마시니 중은 꽤 취하였다. 그러나 거사는 조금도 취한 기색이 없었다.
그 거사는 류치숙이었다. 이윽고 중이 곯아 떨어졌다.
거사는 중의 바랑을 뒤적여 지도를 꺼내어서는 지도의 한 부분을 고쳐 그려 넣었다. 바로 남해의 가청산이었다.
그 중은 조선의 기밀을 탐지하는 왜인 밀정으로 안동에 온 까닭은 대감을 죽이기 위해서 였다. 장차 전쟁이 벌어지면 그 대감이 자기들의 일을 그르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의 막바지, 남해 노량바다에서 마지막 큰 전투가 벌어졌다. 빠른 물살을 타고 전선은 노량에서 관음포로 옮겨졌다. 이순신 장군은 왜선을 관음포로 밀어 넣었다. 왜선은 물살을 따라 관음포로 들어갔다. 이순신 장군은 이내기 끝과 어서리 끝을 막고 총공격을 가했다. 입구가 막힌 왜선은 강진바다를 향하여 배를 몰았다. 그러나 배는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다. 바다인 줄 알았던 가칭이가 뭍이었던 것이다. 왜구는 가칭이 바다에 갇혀 죽기살기로 싸우다가 대다수는 물에 빠져 죽고 일부는 가청이 언덕을 넘어서 왜성이 있는 선소로 도망을 갔다.

<박진욱의 역사 속의 유배지 답사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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