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떡처럼 먹을 수 없어 아무런 쓸모가 없고, 실속이 없는 일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진수(陳壽)의 정사(正史) 삼국지, 위서(魏書)의 노육전(盧毓傳)에서 유래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그림의 떡’이라고 한다.
조조(曺燥)의 손자인 조예(曺睿)가 즉위하여 위(魏)나라 2대 왕 명제(明帝)가 되었다. 그에게는 총애하는 대신(大臣) 노육(盧毓)이 있었는데, 후한(後漢) 말기의 중신(重臣) 노식(盧植)의 아들로 학식이 높고, 행실이 단정하여 명성(名聲)이 높았다.
노육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었지만 전란(戰亂)과 흉년을 극복하고 가정을 잘 지키는 등 높은 신망을 받았다. 명제는 그의 충성심을 인정하여, 그를 요직에 등용하였다. 어느 날 명제는 노육을 불러 중서랑(中書郞)으로 쓸 만한 사람을 천거하라고 하면서 “인재를 등용 할 때, 명성이란 땅 바닥에 그려 놓은 떡과 같은 것이므로 먹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의 됨됨이를 두루 살펴 인선(人選)하라”고 말했다. 이에 노육은 “명성만으로 이인(異人)을 얻을 수 없지만 상사(常士)는 얻을 수 있습니다. 상사는 가르침을 두려워하고 선(善)함을 그리워하여 명성을 얻는 것이므로 이는 미워할 바가 아닙니다. 옛날에는 말로써 아뢰고 공(功)으로써 공정하게 시험한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시험제도가 폐지되어 비방과 칭찬으로써 진퇴가 결정되므로 진짜와 가짜가 뒤섞여 있고, 허(虛)와 실(實)을 가리기 어려운 형편입니다. 그리고 명성만 믿고 인재인지를 판단할 수 없으나, 덕망으로 이름난 사람을 배척해서는 안 되며, 고시(시험)를 통하여 발탁하는 제도를 갖추자”고 아뢰었다.
이 말을 받아들어 명제는 고시제도를 다시 시행하도록 하였다. 그림의 떡처럼 먹을 수 없어 아무런 쓸모가 없고, 아무 실속이 없는 것을 비유하거나 먹을 수 없는 그림의 떡으로 배를 채우는 것처럼, 허황된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안하는 것을 비유하는 성어이다. 비슷한 성어로 화중지애(畵中之愛)가 있다. 그림 속의 사랑,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사랑할 수 없는 그림 같은 존재, 요샛말로 짝사랑이라고나 할까? 짝사랑을 척애(隻愛)라고도 하는데, 남녀 간에 어느 한쪽만이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짝사랑하는 이에게는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림 속에 사랑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화폭에 담았으면 어떨까? 그림의 떡이란 마음에는 있으나 차지하거나 사용할 수 없는 것, 보기만 했지 가지거나 실제로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림 속의 사랑, 다시 말하면 이룰 수 없는 사랑, 역시 짝사랑으로 위안할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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