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에 “닭이 천이면 봉이 나오고 말이 천이면 용마가 나온다”는 말이 있다.
수가 많으면 인물이 생긴다는 뜻이다. 창선에 목장을 개설한 이래 임진왜란 때는 천 필이 넘는 말을 기르는 최성기였다. 그때 많은 말 속에서 한 말이 어찌나 성질이 사납고 날쌘지 아무에게도 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 소문이 진주에 주둔하고 있던 김덕령(金德齡 1567~1596)장군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김덕령 장군은 창선으로 건너와 상신 뒷산의 고동바위에서 용마를 잡아탔다.
신기하게도 용마는 하늘을 향해 한 번 포효한 후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용마는 고동바위를 지나 상신마을로 달려왔다. 김덕령 장군이 타고 온 용마의 발자국이 고동바위에 남아 있고 상신 돌다리에도 같은 발자국이 남아 전해져 오다가 정사년(1917) 홍수에 유실 매몰되었다고 한다.
용마가 어찌나 날쌔고 영특한지 김장군은 이 용마를 타고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그 뒤 장군이 무고로 옥에 갇힐 때마다 용마는 미리 알고 며칠 전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아 김 장군의 불행을 미리 알았고 한다.
이몽학의 모반에 연루되었다는 무고가 있자 장군을 바라보면서 눈물까지 흘리기에 장군은 화를 당할 것을 각오했고 끝내 풀려나지 못하고 고문으로 죽게 되었다. 용마도 마침내 굶어 죽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