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두사는 과거 ‘자성선사(資聖禪寺)’라고 알려진 중국불교의 성지다. 미래에 올 부처인 미륵보살을 모시는 미륵성지로도 유명하다. 그 때문인지 이 절에는 거대한 미륵보살상이 조성돼 있다. 높이만 56m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불상이다. 사찰의 규모에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안개 속에 보이는 56m의 높이의 거대한 포대화상이 볼록한 배와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마치 중국 산타 할아버지와 같은 모습이었다. 중국의 포대화상은 커다란 포대에 무엇이든 담아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나눠주었다고 한다. 포대화상의 온화한 미소를 뒤로하고 우리일행은 당나라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고촌인 ‘자성고진’으로 이동했다. 


당나라의 교사관, 고현아, 공자묘를 보면서 중국의 문화가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을 알 수 있었다. 새벽부터 시작한 바쁜 일정으로 거의 파김치가 되어 숙소에 도착했다. 
다음날 아침 새소리와 함께 눈을 뜬 곳은 신선거에 있는 숙소였다. 안개가 자욱한 탓에 우리나라 뒷동산에 온 것 같은 편안한 기분으로 아침을 먹고 무심코 바라본 산의 절경은 비명과 함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중국 절강성 태주(台州)시 선거현(仙居縣)에 있는 신선거(神仙居)의 지명은 ‘영안(永安)’이었으나 북송의 황제가 이 곳의 절경에 넋을 잃고, 이곳은 신선이 사는 곳이라 하며 ‘영안(永安)’이란 기존의 지명 대신 ‘신신거’라는 지명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신선거를 다녀 간 많은 사람들은 신선거를 태항산(太行山)과 장가계(張家界)를 합쳐 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청송의 주왕산과 흡사하지만 규모도 크고 고봉도 훨씬 많다. 마치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을 동양적인 모습으로 바꾸어 옮겨 놓은 듯한 신비로운 웅장함이 거짓말처럼 눈 앞에 펼쳐졌다.
1억년 전 화산폭발로 형성된 유문암 봉우리는 해발 700~800m대에 걸쳐 있고, 편백나무가 즐비한 신선거 산길에 우뚝 서있는 장군암, 잠자는 미인 바위, 비천폭 등 수 백 개나 되는 기암괴석과 암벽, 그리고 거인처럼 서 있는 바위 봉우리의 모습 앞에 할 말을 잃었다. 나는 선계와의 경계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도인의 마음을 경험 할 수 있었다.  
높이 100m가 넘는 신선거 정상의 관음산. 관세음보살이 합장하는 모습의 거대 바위를 바라보며 웅장함과 함께 신성함을 느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절벽계단 길을 걸으며 허벅지와 종아리가 터져 나갈 듯한 고통을 느꼈다. 평소에 운동을 하지 않은 것을 원망해도 이미 허망한 원망이었다. 120m 길이의 출렁다리 밑의 천길 낭떠러지 하늘 길을 건너면서 몇 번이나 주저앉았다. 시운곡時運谷이라는 절벽을 돌아나가는 순간, 깊은 계곡의 골을 타고 빠져나가는 시원한 바람이 등줄기를 흘러내리는 땀과  긴장감을 시원하게 날려버렸다. 
신선거 정상에서 거인과 같은 바위산과 깎아지듯 절벽에 걸쳐 있는 구름을 보았다. 나는 평생을 살아가며 이 같은 절경은 다시 보지 못할 것이란 생각에 눈 앞에 펼쳐진 천하 절경들을 가슴에 소중히 담았다.
3박 4일 동안 극기훈련 수준의 문화탐방 연수는 온몸을 만신창이로 만들었지만 머리와 가슴에 담은 중국의 문화와 자연경관은 신선한 충격으로 와 닿았다. 그리고 남해의 아름다운 바다와 함께 펼쳐진 남해만의 아름다움이 결코 중국의 자연 경관에 뒤지지 않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인들이 만들어 낸 문화가 설두산과 신선거의 아름다움과 함께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에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중국을 찾는 것이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남해의 자연경관에 남해만의 우수한 문화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세계의 여행객들이 남해를 찾는 행복한 상상을 해 보았다. 
어느덧 인천 앞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서울에 출장을 가면 번잡한 서울이 낯설고 어색했는데, 막상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왜 그렇게 반갑고 익숙한지 살며시 웃음을 머금고 내 고향 남해를 향해 버스에 몸을 실었다.<끝> 
/남해문화원 사무국장 김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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