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殷)나라 왕이 거울로 삼아야 할 멸망의 선례는 먼데 있지 않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실패를 자신의 거울로 삼는 것’을 비유한 말로, 중국 시경(詩經) 대아탕편(大雅蕩篇)에 나오는데, ‘멸망의 선례(先例)는 멀지 않다’는 데서 유래했다.
은나라 사람들은 전대(前代)의 하(夏)나라가 망한 것을 거울삼아 경계하라, 즉 이전의 실패를 자신의 교훈으로 삼아 주의하라는 것이다. 중국의 왕조는 하(夏) 은(殷) 주(周)나라로 이어지는데 하나라 마지막 황제가 걸왕(桀王)이었고 은나라 마지막 황제가 주왕(紂王)이었는데 이 두 군주는 극악무도한 폭군들로 알려져 폭정과 방탕을 일삼던 그들 때문에 왕조가 무너지는 비극이 불가피했던 것으로 시경에는 '은감불원'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은나라 주왕은 원래 지용(智勇)을 겸비한 현주(賢主)였으나 그를 폭군으로 치닫게 한 것은, 정복한 오랑캐의 유소씨국(有蘇氏國)에서 공물로 보내온 달기라는 희대의 요녀 독부였다. 주왕은 미녀에게 빠져 그녀의 환심을 사기위해 막대한 국고를 털어 주지육림(酒池肉林)속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음주음락(飮酒淫樂)으로 정신을 잃었고, 왕에게 참언(讖言)을 하는 충신을 처형하는 등, 악왕(惡王)의 으뜸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간 주왕의 포학을 간(諫)하다가 많은 충신이 목숨을 잃은 가운데 왕의 보좌역인 삼공(三公) 중, 구후(九侯)와 악후(鄂侯)는 처형당하고 서백(西伯:훗날 주문왕周文王이 됨)은 유폐되었다. 서백은 그때 “600년 전 은왕조의 시조인 탕왕(湯王:주왕의 28대 선조)에게 주벌당한 하왕조의 걸왕(桀王:주왕과 같은 폭군음주)을 거울삼아 그 같은 멸망의 전철을 밟지 말라”고 간하다가 화를 당했는데 그 간언(諫言)이 ‘은감불원 재하후지세(殷鑑不遠 在夏候之世, 은나라왕이 거울로 삼아야 할 선례는 먼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 걸왕 때에 있다)’라는 말로 시경(詩經) 대아편(大雅篇) 탕시(湯詩)에 실려 있다.
삼공에 이어 삼인(三仁)으로 불리던 미자(微子:주왕의 친형, 망명), 기자(箕子:왕족, 망명), 비간(比干:왕자, 처형당함) 등, 세 충신도 간했으나 주색에 빠져 이성을 잃은 주왕은 걸왕의 비극적인 말로를 되돌아 볼 여유가 없었다. 마침내 원성이 하늘에 닿은 백성들로부터 이반당한 주왕은 서백의 아들 발(發:주왕조의 시조 무왕武王)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비슷한 성어로 ‘반면교사’(反面敎師 '15.11.6 본지 보도)가 있는데 ‘남의 잘못을 거울로 삼아 그런 과오를 반복하지 말라’는 말인데, 만약 은나라 주왕이 바로 직전의 하나라 걸왕의 포악한 정치를 답습하지 않고, 선정(善政)을 베풀었으면 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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