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고향 진주를 지금으로 부터 25년 전 25세의 나이로 남해로 넘어왔다. 경찰관으로 임명되어 고향을 떠나와 남해에서 정착하며 30세에 남해에서 서면에 연고를 두고 있는 마음과 정서가 같은 여인을 만나 결혼을 하여 2남을 두고 아들 둘은 남해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낯선 남해에 정착하여 가족 구성원이 하나, 둘 늘어나 이제는 남해가 고향인 사람이 3명 진주가 고향인 사람이 나 하나이다. 진주에서 거주한 날들 보다 올해를 기점으로 남해에서 생활한 날들이 더 많아지는 경계 선상에 있다. 삶의 절반이상을 남해에서 거주하고 있는 요즘 들어 나는 남해에서 어떤 존재인가? 하는 이런 질문을 가끔 던진다. 결국 남해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처와 아들 둘로 인하여 가족의 고향인 남해에서 뼈를 묻어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방인으로 남해에 들어 왔지만 세월의 힘으로 인하여 남해 사람이 되어 버렸다.
  가끔 내 고향 진주를 가게 되면 친구들을 만나거나 일을 보다가 문득 나에게 남해가 고향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나도 모르게 식사하시다. 등 남해 고유의 존칭어 “시다”가 입에 붙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남해가 제2의 고향이라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인 것이 남해에서 결혼을 하고 자녀들이 자라는 것을 인식한 뒤이니 약 15여년은 지난 것 같다. 남해로 와서 25년이 지난 지금 기억을 더듬어 보면 진주에서 버스에 몸을 실고 남해대교를 건너 굴곡이 많고 좁은 도로를 한참을 달려가며 남해는 첩첩산중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도착하여 주변을 둘러보니 4면이 바다로 둘러있는 신비로운 섬이라는 생각으로 삼동면 파출소에 첫 부임하여 근무하면서 만나는 하루하루가 설레이는 날들이었다. 처음에 근무한 삼동면은 당시 바다에서 나오는 조개류 등 많은 어류와 해산물로 인하여 면민들의 얼굴에는 늘 미소가 번지며 풍족한 모습이었고 여유로운 사람들로 살아가는 모습에서 한편으로는 섬사람의 강인함이 묻어나는 활기찬 모습의 남해였다. 가끔씩 경찰서를 가기 위하여 남해읍을 가는데 25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변화가 없는 것 같다. 소방도로가 생기고 아파트가 몇몇 들어선 것과 남해유배문학관이 세워진 것 외는 처음 남해 도착한 모습과 거의 같은 모습이다. 당시 나는 남해유배문학관이라는 명칭을 듣고는 남해문학관으로 명칭을 정하고 문학관의 전시물이 유배문학의 특징을 가진다고 설명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아쉬운 생각도 해보았다. 나는 지역 문화 행사에 관심이 많아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 에서 매년 여름철에 실시하는 연극을 관람 하려 자주 가기도 하며 매년 기획되어 찾아오는 연극을 보기 위하여 사전에 자녀들과 같이 함께 볼 수 있는 공연과 시간을 물색하여 놓기도 한다. 더불어 최근 들어서는 금년 3월7일 총 사업비 11억3,000만원을 들여 남해문화체육센터 건물에 남해군에서 고민 끝에 보물섬 시네마 라는 극장을 마련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군단위의 극장이라 시설이나 음향 면에서 조금 떨어질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두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독수리 에디” 라는 포기를 모르는 도전 정신의 영화와 다른 영화 한편을 포함 두 편을 보았다. 그런데 영화를 관람한 날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보물섬 시네마는 지역민의 문화 복지 향상을 위하여 문화체육관광부의 공모사업으로 많은 돈을 들여 조성하였는데 영화를 관람하는 사람이 너무 없는 것 같았다. 한번은 우리가족 4명과 관람객 2명 포함 6인이 영화를 관람하였고 다른 한편의 영화는 관람객이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총 212석 규모에 매회 관람객이 10명이 되지 않는다니 아쉬워하지 않을 수 없다. 관람료도 기존 상영관 비교하여 보면 1인 5,000원으로 저렴한 편이다. 이처럼 남해군에서 고심 끝에 지역민의 문화 향유권 강화를 위하여 조성한 보물섬 시네마를 남해군민 스스로 등한시 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시간을 내어 한번 방문하여 보면 실망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 나는 자신한다. 좌석도 편안하고 멋진 스크린에 음향이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영화관이다. 모처럼 남해군민에게 제공되는 문화의 향유를 지역민이 마음껏 누리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나의 제2의 고향인 남해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방문하고 싶어 하는 그런 보물섬이 되기를 늘 꿈꾸며 나는 남해를 사랑한다.

/남해경찰서 중앙지구대 경위 박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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