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만한 사람의 틀림없는 승낙’, ‘한번 뱉은 말에 끝까지 책임을 진다’는 뜻으로, 중국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계포전(季布傳)에서 유래 되었다.
초(楚)나라 명장이었던 계포는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이 천하를 다툴 때, 항우 휘하의 대장으로 용맹을 떨쳤던 인물로, 의협심이 강하고 약한 자를 돕는 등, 의(義)로운 행동으로, 자신이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신의(信義)와 믿음을 주었다.
그러나 항우의 장수로 유방과의 싸움에서 패하자 유방은 계포를 지명수배하고 현상금을 걸어 쫒기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계포의 사람 됨됨이와 인품을 잘 알고 있던 신하들이 오히려 유방에게 중요한 직책을 천거하게 되어, 중랑장(中郞將)의 벼슬에 올라 의로운 일에 힘써, 많은 사람의 신임을 받게 되었다.
그 후 유방이 흉노(匈奴 오랑캐)를 정벌하기 위해 4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갔으나 선우(禪于)의 흉노에게 포위되어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후, 흉노에 한(漢)나라 공주와 조공을 바치는 조건으로 화친을 맺었다. 이후 유방이 죽자, 흉노의 선우가 과부가 된, 한나라 당시 권력자 여태후(呂太后)에게 청혼의 편지를 보냈는데 ‘외로운 이 몸은 소와 말이 가득한 들판에서 자라서 대국(大國)에서 노닐고 싶었노라, 그대도 홀로 되었고 독수공방 외로우니 두 군주(君主)가 서로 바꾸어봄이 어떻겠소…’라고 하자 이에 진노한 여태후에게 상장군 번쾌가 “제게 10만 병력을 주시면 흉노족을 토벌하고 오겠습니다”라고 했다.
이때 계포가  “번계의 목을 자르십시오. 지난 전투에서도 40만 대군으로 싸웠지만 포위당한 적이 있는데 10만 군대로 흉노를 응징하겠다는 것은 막말입니다”라고 크게 소리쳤다.
그후부터 여태후는 흉노 토벌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조구생이란 사람이 찾아와서 “황금 백근을 얻는 것보다, 계포의 한마디 승낙을 받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는데 어떻게 큰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까?” 라고 묻자 계포는 “한 번 약속하면 반드시 지킨다”라고 했다. 그는 두 번 약속하지 않았다. 계포일락의 고사성어를 낳은 신뢰의 표상이었다.
모든 신하가 두려워하던 여태후까지 쉽게 설득시킬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신임과 사랑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약속이란 지키기 위해서 하는 것인데, 안타깝게도 약속을 해 놓고 쉽게 져버리는 경우가 많아, 계포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비록 작은 약속의 소중함을 알고, 그것을 지켜 갈 때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것이지, 하루아침에 신뢰가 쌓이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약속도 헌 신짝 차버리듯 하는 요즘시대에 시사(示唆)하는 바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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