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어느 나라이든지 국사교과서는 그 나라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집약하고 예측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따라서 그 국가의 기본 성격과 정체성을 알려면 국사교과서를 읽어보면 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국사교과서를 두고 보수와 진보간의 시각적인 편차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그러나 국사문제만은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하여 합의된 평가로 국정이든 검증이든 한가지로만 기술되어야만 한다. 다양성의 선택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대사를 진보진영에서는 다분히 사회주의적인 민중사관으로 해석하고 있어 보수진영의 자유자본주의적인 시각과는 다르기 때문에 상호갈등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공산권 국가에서는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사관에 기초하여 기존의 역사서술을 전부 계급투쟁사관으로 개편하였던 것이다. 북한도 그랬다. 그들의 국사에서는 충무공도 양반지주계급 출신이라는 이유로 폄하하고 있다. 그러면 전체적인 평등을 기조로 하는 민중사관과 개인적인 자유를 최대가치로 하는 역사관에서 어느 것이 더 보편가치에 적합한가는 이미 구 소련의 멸망으로 역사적인 판가름이 났다. 따라서 북한의 역사관도 변태적 민중사관, 즉 김일성의 일가의 가족사에 불과한 허구적 주체사관일 뿐이다.  
 문제는 한국의 중고등학교 현행 국사교과서가 선택의 다양성이라는 민주주의적인 가치관의 허울을 쓰고 세계적인 역사조류에서 폐기된 민중사관을 기조로 구성되고 기술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부 역사교육지침서에서는 김일성의 이른바 ‘만경대 고향집’의 천연색 소개사진은 있어도 남한의 이승만이나 박정희의 고향집은 없다.  또한 구 소련의 외교문서에 의하여 이미 밝혀진 1950년 6월 25일의 북한에 의한 남침사실까지도 애매하게 표현하고 있는가 하면 조국근대화의 결정적인 기틀을 마련한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은 그의 장기군사독재로 은폐시켜 버리는 편향성을 노출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국가지도자에 대한 평가는 공과(功過)의 비가 가령 7 : 3일 경우에는 공적을 크게 부각시키고 있다.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누구나 과오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조국에 대한 애국심과 자긍심을 갖게 함이 역사교육의 목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엇 때문에 대부분의 일선학교 국사교사들이나 일부 역사학자들까지도 자기조국을 긍정 보다는 부정을 강조하면서 국제사회에서 비난을 받고 있는 북한의 시각에서 현대사를 해석하려고 기술하려고 하는가이다. 그 뿌리는 1980년대 대학가를 휩쓴 주사파운동권 문화풍토에서 자란 세대들에게 있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 10여 년간에 더욱 성장하게 된다.  현대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라고 규정하면서 민중사관의 뿌리는 더욱 튼튼하게 자라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사회풍토에서 교육받은 세대가 정치계, 경제계, 문화예술계, 종교계, 언론계, 법조계 심지어 군사조직에 까지 뻗어 나가면서 각계각층의 중심세대로 성장한 것이다. 무엇보다 매우 심각한 문제는 일선학교의 중견교사로 진출하여 그들이 교육현장에서 물을 빨아들이는 솜뭉치와 같은 어린 학생들에게 편향된 국가관을 주입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적어도 국사교과서만은 다양성 보다는 일관성을 지켜야 한다는 관점에서 국사교과서 국정화는 정당하다고 본다. 나라(국가의 정체성: 아이덴티티)는 하나이지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동규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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