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전야제 행사를 시작으로 제25회 군민의 날 및 화전문화제가 내일까지 3일간 남해공설운동장을 비롯한 남해읍 일원에서 열린다.
다소 진부하고 상투적인 표현이기는 하나 50만 내외 군민의 한마당 화합 잔치가 아무런 사고 없이 성공리에 개최되기를 군민의 한 사람으로 기원하는 바다.
민선 6기 박영일 군수 취임 후 처음으로 개최되는 군민 대잔치를 맞는 시점에 이르기까지도 군정과 관련된 다양한 사건이 고소·고발로 이어져 사법당국의 수사와 이에 따른 판단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은 안타깝기 그지 없다.
지난 수 년간 적어도 필자가 언론에 몸담고 있는 동안 유독 이 시기만 되면 ‘화합’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회자됐던 것 같다. 올해를 맞이하는 시점에 종교지도자들이 전한 2015년 신년메시지에서도 ‘화합’은 올해 우리와 우리 사회가 마음에 새겨야 할 단어로 꼽히기도 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갈등의 골이 깊고 또 다양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또 최근 들어 군정 내외부를 둘러싼 여러 사안들을 두고 갖가지 파찰음이 이는 속에서 회자되는 단어도 있다. 바로 ‘소통’이다.
특히 군민의 날 및 화전문화제를 앞두고 빚어진 남해군과 남해문화원간의 갈등은 ‘소통의 부족’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 또한 아쉽게도 소통의 핵심적인 수단인 대화가 이뤄지지 못하고 관계 당국의 수사가 이어지고 있다.
‘화합’과 ‘소통’. 누가 이 명제들을 우리 사회에서 필요없는 것이라 규정지을 수 있겠는가. 동서를 막론하고, 과거와 현재, 미래에도 이 두 명제가 갖는 가치는 사회의 다양성이 증가될수록 더욱 커질 것이다.
“화합해야 한다”, “소통해야 한다”. 누구라도 쉽게 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최근 지역내에서 빚어진 상황 속에서 내뱉어지는 화합과 소통은 아쉽게도 큰 몇 가지 명제를 배제한 채 허공에 툭툭 던져지는 듯한 느낌이다.
바로 기본과 신뢰, 책임이다.
무엇이 기본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고 아쉽게도 우리 지역내에는 이에 대해 생각하기도 전에 서로 할퀴고 쥐어뜯는 신뢰의 부재 상황을 맞았다. 기본과 신뢰가 없는 가운데 이뤄진 일련의 행위들은 결국 우리 스스로 기본에 대한 정의를 규정짓기 전에 사법당국의 몫으로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간 이뤄진 고소 고발건에 대한 사법당국의 결론이 내려지기 이전에는 우리 내부에서도 옳고 그름의 문제가 서로의 입맛에 맞춰 재단된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화합’과 ‘소통’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다. 시끄러웠던 일도 많으니 무작정 소통하고 화합하자는 주민들의 의견도 있다.
그러나 전언한 것과 같이 소통은 대화로 이뤄질 수 있고, 화합은 우리 사회내 기본에 대한 합의와 정의, 이를 바탕에 둔 신뢰가 구축되고, 이같은 신뢰가 깨어졌을 때는 그에 따른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가 진정한 화합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기반이다.
“내 말을 들어라. 듣지 않으면 불통이다”라고 하는 것은 대화가 아니다. 대화가 이뤄지지 않으니 소통이 될 수 없다. 아쉽게도 여느 해와 같이 ‘화합’을 이야기하던 시기에 올해는 그마저 이야기하기도 쉽지 않다. 책임이 어디 있는지 필자로서는 알기 힘들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힘든 농번기를 마친 우리 지역의 어르신들이 바쁜 일손을 잠시 놓고 쉴 수 있는 그런 ‘평안’한 군민의 날 및 화전문화제가 되기를 거듭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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