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맥(菽麥)’은 글자 그대로 ‘콩과 보리’를 일컫는데 둘 다 밭에서 나는 식용작물로 생김새나 모양, 크기 등이 확연히 달라서 누구나 쉽게 분간할 수 있다. 그런 콩과 보리조차 구별 못하는 것은 바보나 우둔한 사람일 것이다. 이런 사람을 ‘숙맥불변’이라고 표현하는데 줄여서 ‘숙맥’이라고 한다. 그래서 어리석은 행동을 할 때 흔히 “이 사람 정말 숙맥이군”이라고 말한다.
요즘에는 ‘순수한 사람’, ‘재미없는 사람’이란 의미로도 널리 쓰이고 있다. 그리고 ‘사리분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리바리한 사람’을 흔히 ‘쑥맥’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쑥맥’은 잘못된 표현이다. 순우리말로 착각하기 쉽지만 숙맥불변이란 고사성어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 고사의 유래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진(晉)나라의 대신들이 왕을 시해하고 14세 소년인 주(周)를 왕위에 앉히려고 한데서 비롯된다. 당시 소년 도공(悼公)이란 소년이 있었는데 그는 주 임금을 왕위에 앉혀놓고도 딴 마음을 품는 조정대신을 한데 모아놓고 “군주를 세우는 것은 명령을 내려 나라를 다스리게 하는 것인데 만일 군주를 모셔놓고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다면 군주의 위엄이 서겠냐”고 대신들에게 물어 군주의 명에 따를 것을 다짐받는 당찬 면이 있는 이었다. 그런 도공에게는 형이 있었는데 어찌나 우둔한지 콩과 보리도 구별 못할 정도로 어리석었기 때문에 아무 일도 안심할 수 가 없어 대신들은 형을 제쳐놓고 동생을 임금으로 모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도공의 형은 벼슬도 없이 지냈는데 이를 빗대 좌구명(左丘名)이란 사람이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그 형을 두고 숙맥불변이라고 한 것에서 유래됐다.
요즘에야 순진한 사람을 숙맥이라고도 하지만 이는 긍정적인 의미이고 본래는 못난 사람을 가리키는 뜻이며, 가끔 우리 주변에서 진정한 의미의 ‘숙맥’들을 만나게 된다. 세상에 콩과 보리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마 없겠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자세히 살펴보면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숙맥같은 이들이 많은 세상이다. 다시 말해 모두가 어리석은 인생을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리석다고 하는 이도 때로는 현명한 일을 할 수 있고 때론 지혜롭게 표현하고 좋은 충고도 한다. 바꿔 말해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의 모습이 숙맥이요, 환경과 처지가 바뀌었다고 자신의 소신을 아무 거리낌 없이 뒤짚어 엎는 것이 숙맥이다. 또 흔히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하는 것이 비양심이며, 최소한의 양식도 저버린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인사들이 사회 전면에 나서고 있는데 숙맥불변한 누(累)를 범해 후회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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