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으로 점철된 그의 삶에 석채화는 ‘치유’를 상징하는 키워드
무주에서 남해로…작품 무대 옮길 예정, “남해의 속살을 그리고 싶다”

분명 늦봄이지만 초여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5월의 어느 주말.
국내에서는 정통파 석채화가로는 유일하고 전 세계적으로도 북한과 중국에 각각 1명씩 총 3명, 화단(?壇)에서도 흔치않은 동양화가가 남해에서 작품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의 작업장이 있는 무주로 한 걸음에 내달렸다.
기자가 만나러 간 이는 동양화가이자 돌가루로 그림을 그리는 석채화가 김기철 화백.
초여름의 열기가 조금 더 뜨거워지고 신록이 녹음으로 짙어질 즈음 무주에서 남해로 작품무대를 옮겨 올 예정인 그는 지금 무주 읍내가 한눈에 내려다뵈는 무주예체문화관내 각종 전통공예작가 등 문화예술인의 공간인 공방건물에 자신의 작업장을 두고 있다.
기자가 찾았을 때는 마침 김 화백의 공방건물과 인접한 최북미술관 2층 기획전시실에 김 화백의 작품이 전시된 무주전통공예공방전이라는 기획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취재 전에 김 화백에 대한 취재정보 수집차 컴퓨터를 통해 봤던 듬직한 인상의 김기철 화백이 전시실로 기자를 안내했다.
동양화를 전공한 김기철 화백은 어느 날인가 자신의 작품이 세월에 빛이 바래는 것을 보며 작품 초기 열중해 온 기존의 물감을 이용한 화풍에 회의를 느끼게 돼 물감 대신 돌가루를 안료로 사용하는 석채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석채화가로의 그가 걸어온 길은 그의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만큼이나 힘겨운 여정이다.
석채화라는 기법이 생소한 군민들을 위해 먼저 설명을 좀 하자면 석채화는 말 그대로 돌가루를 물감 대신 이용해 캔버스 대신 광목천에 그림을 그리는 미술 기법이다.


그러나 화방(畵房)에서 돌가루를 편하게 살 수 있다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돌 속에 숨은 각양각색의 색을 찾아 산으로, 강으로, 들로, 광목천에 뿌릴 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야한다. 그렇게 발품을 팔아 무겁게 돌을 들고 와서는 정으로 돌을 쪼아 필요한 색이 들어있는 부분을 떼어내야 하고 그런 뒤에는 쇠절구에 넣어 고운 가루로 빻는 고된 과정이 또 이어진다. 이쯤에서 드는 궁금증 하나. 기계로 빻으면 되지 않냐는 우문(愚問), 사실은 기자도 했다.
김 화백은 석채화에 쓰이는 돌가루는 아교를 접착제로 쓰는 만큼 일정한 입자크기가 있어야 한다고 우문에도 불구하고 성실한 대답을 내놓았다. 너무 고우면 가루가 날려 색이 제대로 나지 않고 너무 크면 작품이 거칠어 정교함이 떨어진다는 것. 원석의 색을 고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빻는 작업이 더 중요하다는 요지다.
그렇게 아교로 광목에 밑그림을 그리고 필요한 색을 입히고 말렸다가 작품의 명암을 위해 다시 덧칠을 하고 또 돌가루를 덧뿌리고 하는…석채화는 작품 하나하나가 고된 노동과 오랜 인고의 결과다.
그런 탓에 석채화가 김기철 화백의 작품은 일반적인 미술작품의 평면적 미학을 넘어 입체감마저 느껴진다. 미술에 문외한인 기자도 오래도록 작품을 들여다 보게하는 마력이 그의 작품이 가진 힘이다.

그런 탓에 김 화백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인지도와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평이 더 좋다. UN 반기문 사무총장도 그의 석채화를 소장하고 있으며 뉴욕 UN 본부에도 그의 작품이 전시돼 있고 국내 주한 외국공관은 물론 태국왕실과 필리핀 정부, 하와이 주립정부 관계자들, 이름만 대면 알만한 국내 저명 정재계 관계자들도 손꼽히는 김 화백의 작품애호가들이다.
충북 영동이 고향인 김 화백은 7년전 지금 무주예체문화관의 컨셉트를 구상한 한 무주군 공무원의 열정에 감동해 인근 보은과 영동, 멀리 음성, 대전, 수도권 등지의 지자체에서 쏟아지는 러브콜에도 불구하고 4년전 무주에 둥지를 틀었다.
그러나 근시안적인 지자체의 문화예술정책에 큰 실망을 느낀 그는 ‘남해’를 알게 됐다. TV 브라운관에 소개된 가천다랭이마을의 풍광은 자연경관도 작품의 구도로 보는 김 화백의 시선을 매료시키기 충분했다. 그렇게 한 두 번 남해를 찾은 그는 점차 남해가 가진 특유의 매력에 젖어들게 됐고,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작품활동을 해왔던 그의 꿈은 남해바다의 아름다운 색, 어느 곳이건 산과 들, 바다를 함께 그려낼 수 있는 남해의 자연을 작품에 담아내고 싶다는 꿈으로 이어졌다.
작품에 쓰일 돌가루도 남해의 바다와 들, 산에서 구한 돌로 쓰고 싶다는 그는 “남해의 아름다운 자연을 남해의 속살로 채워넣은 작품을 그리고 싶다”는 예술인다운 시적 표현으로 승화시켰다.
무주까지 먼 길을 내달려 온 기자와의 짧은 인터뷰 이후 기자의 이름을 적어 석채화 기법으로 만든 선물을 내놓는 그는 기자가 앞으로 걸어야 할 언론인의 본분과 짧은 시간에 상대방과의 대화 속에서 읽은 성품을 돌가루색에 담아 의미를 담은 작품 하나를 완성시켰다.
힘겹고도 고된, 또 오랜 인내와 선비가 먹을 가는 마음으로 오랜 세월 쇠절구를 찧었던 그의 작품이 하나의 수행이자 이런 가치를 담은 작지만 의미있는 선물을 내놓을 줄 아는 김기철 화백. 그의 눈에 읽히고 그의 손에서 탄생할 남해의 아름다운 자연과 남해의 속살로 채워질 그의 작품이 기대된다. <다음호에 계속>
/정영식 기자 jys23@namhae.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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