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면서 항상 순풍에 돛단 배 같이 순조롭게 잘 풀리면 좋으련만 희로애락을 실고 각축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다.
특히 불쾌한 일은 어디서건 있게 마련이며 직장에서는 동료간, 상사와 부하직원간, 갑과 을의 사이 등 자신의 이익과 상충되는 것이 인간사이기에 늘 좋을 수만은 없다.
그래서 어떻게 지혜롭고 슬기롭게 극복해 가느냐에 인생의 성패(成敗)가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이 삶에서 참는 것을 가장 중요한 덕목(德目)으로 삼았던 까닭이기도 하다. 참는 동안은 수모를 당한 것처럼 느낄지 모르나 시간이 지나면 승자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순간을 참지 못해서 큰 일을 그르친 사례가 얼마나 많은지 새삼 느낀다.
충청도 연산 김씨 어느 양반집에서 둘째 아들을 결혼시켜 살림을 내어 주었는데 이들 부부에겐 자식이 없었다.
따뜻한 봄날, 둘째 아들은 팔도 유람을 다니다가 어느 주막에 들려 대포 한잔을 하려고 하는데 연세가 지긋한 영감 한분이 술은 먹고 싶은 모양인데 돈이 없어 몹시 어쩔 줄 몰라 하는 것 같아 할 수 없이 마시려던 술 한잔을 영감에게 권했다. 영감은 얼른 받아 마시고는 술값 대신 ‘인지위덕’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자리를 떠났다.
둘째 아들은 ‘인지위덕’을 잊지말라던 영감의 당부를 계속 되새기며 다녔다.
그로부터 약 1년쯤 지났을까. 유람생활을 마치고 어느 날 저녁 집에 돌아 왔는데 방안의 등잔불에 마누라 모습과 상투를 쓴 두 사람이 서로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 비쳤다. 둘째 아들은 필시 마누라가 바람이 나서 서방질 하는 생각이 앞서 몽둥이를 들고 내려치려고 하는 순간, 주막집 영감의 ‘인지위덕’을 연상해 간신히 마음을 추스리고 인기척을 했다.
마누라는 “이제 오셨소, 어서 오십시오” 하며 반갑게 맞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사람을 깨우며 “얘야 일어나라 형부 오셨다”라고 말하자 옆에 누워 있는 사람이 일어나는데 그는 남자가 아니라 처제였던 것이다. 처제가 모처럼 언니집에 찾아와 너무 더운 나머지 머리를 풀상투처럼 올리고 잤는데 얼른 보기엔 남자처럼 보였던 것이다.
만약 그가 영감이 말했던 ‘인지위덕’을 기억해 내지 못했다면 순식간에 두 목숨이 사라질 수 도 있었던 상황. 술 한잔을 내어주고 배운 ‘인지위덕’의 배움이 마누라와 처제를 살린 것이다. 옛 말에 ‘참을 인(忍)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했다. 또 매사에 잘 참는 것이 아름다운 덕(德)이라고도 한다. 덕이란 도덕적 이념을 실천해 나아가는 인격적 능력이라고 했던 말을 다시 되새겨 보게 하는 고사성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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