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금치 브랜드화, 無에서 有를 창조한 고종남 대표

이전에는 ‘시금치’ 하면 가장 연상되는 캐릭터가 ‘뽀빠이’였다. 깡통에 든 시금치를 벌컥벌컥 마시면 온 몸에 근육이 생기고 끝을 알 수 없는 힘이 솟아나는 만화 속 캐릭터. 지금은 ‘시금치’하면 지난 4년 7개월여간 시금치와 뗄려야 뗄 수 없는 열정적인 삶을 이어왔던 보물섬남해클러스터 조합공동사업법인의 고종남 前 대표이사를 떠올리게 된다.
사실 그가 클러스터 대표이사직을 그만 두게 될 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지난 2월말께 처음 들었다. 그러고도 조금 시간이 흐른 뒤 대표이사 이임 및 신임 대표 선출을 다루게 될 법인 총회를 하루 앞둔 지난 5일, 그를 찾아가 만났다.
여전히 그의 휴대전화 연결음은 가수 양희은 씨가 특유의 낭랑한 목소리로 남해시금치를 자랑하는 라디오 광고멘트 그대로였고,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내일 자리를 떠야 하는 사람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도시 백화점 특판행사 일정을 조율하고 찾아 온 바이어들을 만나느라 그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가장 먼저 정든 시금치 클러스터 법인을 떠나는 심정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담담하게 돌아온 고 전 대표의 답이다.
“…스스로 열심히 했어요. 전국 팔도를 발로 뛰어다니며 처음에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남해시금치’를 외치고 다니며 홍보하고…. 누구의 평가 이전에 스스로 열심히 했다 싶으니 그리고 정 기자 보는 것처럼 대도시 백화점 특판행사 준비하느라 짐은커녕 볼펜 하나도 못 싸고 있어요. 그냥 누구든 농협으로 돌아가면 어깨 툭툭 두드려주며 ‘수고했다’ 그 한 마디만 해 주면 좋겠다 싶네요.”
그가 참 ‘스스로 열심히 살았다’고 말했던 그 세월을 깊게는 아니지만 곁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것은 기자에게는 참 큰 자극이기도 했다.
시금치 명품 브랜드 사업이라는 클러스터에 주어진 첫 미션을 받고 아무 것도 없는 곳에 땅을 사고, 건물을 짓고, 세척장비며 포장기계 들여오고…. 그리고 난 뒤 농협 하나로마트부터 시작해 이마트, 홈플러스 등 전국 유수의 대형마트에 남해 시금치를 납품하게 되는 순간까지 곁에서 봐 온 그는 처음 주어진 미션에 참으로 충실했고 그런 와중에도 촌각을 쪼개 중앙대에서 저온저장 등 수확 후 작물관리기술 전문가과정, 농수산물유통공사 최고경영자 MBA과정, 서울대 식품영양산업 최고경영자 과정에 이르기까지 자기계발에도 참 소홀함이 없는 그런 이였다. 주어진 업무만 해도 빠듯해 보이던 그에게 교육까지 받는 이유가 참 궁금했던 터였다.
돌아온 그의 답은 이랬다. 각종 전문가 과정에서 만난 이들은 전국에서도 내노라 하는 유통업계의 큰 손들이었고 어떤 이는 농산물 유통시장에서 가격 결정과정에 까지 관여할 수 있을 정도로 해당 시장에서 수십년간 종사했던 이른바 유통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과 중앙부처 간부급 공무원들이었다고. 그런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남해시금치 칭찬 한 마디는 클러스터 전 직원이 백 번 남해시금치를 외치고 다니는 것보다 큰 효과로 돌아왔고, 개인 시간조차 생각할 겨를 없이 이들과 함께 교육을 들으며 남해시금치를 알려온 덕에 지금은 이들이 스스로 남해시금치를 전국에 알려주는 홍보대사가 됐고, 그 인적 네크워크를 갖게 된 것이 ‘명품 남해시금치’를 만들 수 있는 첩경이 됐다는 이유였다. 얼마 전에는 이 교육과정에서 만난 전 농산물유통공사 간부급 퇴직 직원 가족에게서 남해시금치에 대한 무한애정을 담은 팬레터를 받기도 했다며 뿌듯해 하는 그다.


4년 7개월, 25년간을 농협에 근무하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기간동안 가장 그의 뇌리에 박힌 가장 기억나는 한 장면은 무엇이었을까. 한참을 기억을 더듬던 그는 몇 장면을 손에 꼽았다.
전국 팔도를 다니며 바이어들을 만나고 또 다른 바이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버스 안에 테이블을 설치해 이동하면서도 판촉하고 회의하고 납품계획을 논의하고…. 그렇게 대형마트를 뚫어내고, 농가에서 매취한 시금치를 작업장에 옮겨 추운 겨울, 얼음장 같이 찬 물에 깨끗이 씻어내고 깔끔하게 포장지에 담긴 시금치를 ‘명품 남해시금치’ 광고패널이 붙은 대형마트 납품차량에 실어보낼 때 마치 정성을 쏟아 기른 자식을 시집 장가 보내는 마음으로 보냈던 그 때. 그 몇 장면을 회상하다 추운 겨울 얼음장 같은 물에 이른 새벽부터 밤 늦은 시간까지 언 손을 불어가며 함께 수고해 준 작업장 인부들과 직원들을 떠올릴 때 고 대표는 “참으로 미안하고 고마운 분들”, “이 곳이 아닌 어디에 있더라도 절대 잊을 수 없는 분들”이라며 이어가던 말에 한참 쉼표를 붙여 얘기했다.
스스로 열심히 했다 자위(自慰)하며 이제는 떠날 준비를 하는 그에게 가장 아쉬운 점은 무엇이었을까.
“참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도 말처럼 마음처럼 쉽지 않은 게 농산물 유통입디다. 노지에서 키운 시금치의 특성은 살리며 안정적인 물량을 확보하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일선 농가 농업인들을 만나 품질 향상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같이 토론하고 정확한 납품기한을 지켜 바이어와의 신뢰를 쌓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했는데도 이번 시즌처럼 가격이 좋지 않아 농민들에게 죄짓는 기분이 들 때 참 힘들더군요. 지난해 이형주 논란이나 발아부진에 따른 종자 문제가 제기됐을 때도 참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지난해에 비해 2배 이상 생산력이 높아진 이후에는 농가 불만이 점차 누그러지긴 했지만 가슴 한 켠으로는 미안하고 때로는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했죠. 그래도 이전에 전국에서 시금치 하면 포항하고 신안만 떠올리던 때에서 이제는 ‘남해시금치’가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것에는 일선 농가 농민들, 작목회장님들의 협조와 도움이 컸습니다. 감사드린다는 말씀 외에는 드릴 말씀이 없네요.”
아무 것도 없던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고 자리를 떠나는 그에게 마지막 남은 바람이 있다면 무엇일까.
“2009년 8월에 처음 클러스터에 몸을 담았었습니다. 제 손으로 직접 땅을 사고, 하나하나 갖춰 지금까지 왔죠. 앞으로 갈 길이 더 남았지만 이제 시금치를 찾는 소비자들의 인식에 ‘남해시금치’가 거론되고 회자되는 것은 큰 보람입니다. 얼마전 홈플러스 납품분 1봉지당 10원의 적립금으로 남해초 축구부를 후원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일을 하면서 뿌듯함을 느껴던 일 중 하나입니다. 부족하지만 저를 믿고 도와준 직원, 현장 작업장에서 수고해 준 모든 분들, 클러스터 대표를 맡아 일하는 동안 큰 울타리가 되어준 각 조합장님들. 모두 감사드리며, 이제 타 주산단지 작황에 따라 일희일비하지 않는 진정한 명품 남해시금치로 계속 성장발전해 나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비록 몸은 떠나지만 마음은 늘 여기 있을 겁니다”.
다음날 법인 총회에서 신임대표이사 선출 건이 통과되고 나서 그의 SNS에는 이런 글이 올라 있었습니다.
“전국을 내 집처럼 다니며 명품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온몸을 던질 때 주변의 응원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이제 새남해농협을 전국의 명품 농협으로 만들기 위해 온 몸을 던지려 합니다”. ‘미스터 뽀빠이’라 불리운 사나이, 그가 진정한 명품으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미스터 뽀빠이!”
/정영식 기자 jys23@namhae.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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