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정부의 쌀 개방 협상 중단과 식량자급률 법제화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던 농민들이 이번에는 쌀 개방을 반대하는 농민들의 심정과 결의를 보여주기 위해 수확을 앞둔 나락논을 트랙터로 갈아엎었다.

지난 22일 전농 남해군농민회 농민들은 국도 19호선에서 잘 볼 수 있는 고현면 오곡리 길가 250평의 나락논을 트랙터로 갈아엎는 시위를 벌인 뒤 여기에 ‘이 논은 더블유티오(WTO) 쌀 개방 반대를 위해 남해농민들의 뜻을 모아 갈아엎은 논입니다’는 선전현수막을 세워놓았다.

콤바인으로 수확해야 할 나락을 트랙터로 갈아엎는 농민들의 심정은 어떨까?

나락논을 갈아엎기 전에 연세가 지긋한 한 농민이 나서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한 정치연설은 지금 우리 농민들이 처한 상황과 심정을 잘 나타내고 있었다. 그 농민의 연설에는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분노가 가득 실려있었다. 그 농민의 연설 속에 등장한 노무현 정부는 이미 정부가 아니었다.

“우르과이라운드가 나온 지 10년이나 되는데 그동안 정부와 정치인들은 도대체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안기부자금이니. 차떼기에만 정신이 팔려 있으니 이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돤 것 아닌가? 국민들의 먹거리를 생산하기 위해 뼈빠지게 일하는 농민들이 이렇게 나락논을 갈아엎어야 한다. 누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나. 우리 농민들도 책임이 있다. 우리 농민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들을 국회로 또 보냈기 때문이 아닌가”

평범한 농민이 낮은 목소리로 한 짧은 이 정치연설은 참석한 농민들의 가슴을 징징 울리고도 남았다.

이날 농민들은 노무현 정부는 쌀 개방 협상을 즉각 중단하라고 외쳤다. 쌀 개방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라고 외쳤다. 식량자급률을 법률로 정하라고 외쳤다. 그리고는 트랙터를 나락논으로 집어넣고 다된 나락을 갈아엎었다. 농민들은 이날 갈아엎은 나락논의 나락 몇 줌을 청와대로 보내겠다고 했다.

수만 년 동안 농민에게 나락은 어떤 존재였던가? 농민이 다된 나락논을 갈아엎었던 적이 있었던가? 값은 나가지 않아도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생각하며 여름 내내 땀흘리며 가꾼 나락, 어쩌면 자식이나 다름없는 나락을 갈아엎는 농민들의 심정은…?

농민들에게는 더없이 우울한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나락이 무너지면 마늘이 무너지고 마늘마저 무너지면 남해가 무너지고 말 것이다. 몇 년 못 가 무너질 농촌을 누가 지킬 것이며, 무너진 농촌으로 어떻게 민족의 안위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욱 우울해지는 추석이다.

그러나 힘을 내지 않으면 안 된다. 마음으로 포기하는 순간 진짜 패배자가 되기 시작한다. 고향을 찾은 자식들에게 말해야 한다. 너희들도 가만있지 말고 농민부모와 고향을 위해 싸우라고 요구해야 한다. 400만 농민이 그들의 자녀들과 함께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 들고 일어설 수만 있다면 막아낼 수 있는 것이다.

벼랑끝 농민의 현실을 그대로 비춰서 자식들의 마음에 담아보내는 보름달이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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