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면 가천 마을은 자연환경면에서 일제시대부터 이름이 나 있었다. 홍현리에서 가천리로 가는 길이 약 45도 가파른 경사로써 바다를 내려다 본 바위산길이였고, 보행하는 사람들이 흙을 밟는 것보다 작은 바위를 밟는 것이 더 많았다. 그 바위길을 20여분 걸어 지나가면 경사도가 다소 완만한 두 개의 짧은 능선이 바다로 향해 뻗어 있다. 두 농선 골작에 30여호 작은 마을이 자리 잡았고, 마을 오른쪽 능선 안쪽에는 일본 육군 1개 중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마을 왼쪽 가파른 경사에는 밭이  되어야 할 곳을 다락 논을 만들어, 설흘산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로 벼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필자의 출생지 숙호 마을 뒤 계곡에도 산 정산 개울지점에서 해변까지 약 500여미터 경사진 거리에 개울양쪽 다랭이 논이 약 60여개 펼쳐 있지만 논바닥 면적보다 논 언덕 면적이 더 넓은 다랭이도 있다. 이런 남해 농토의 험한 환경 가운데 가천다랭이 논은 경치 면에서 감탄을 주는 곳이다. 다랭이 논중에 가장 넓은 필지 약 200평에 남명국교 분교를 세워 30여호 아동의 교육장이 되게 했다. 마을에 주둔한 일본군대의 힘이 작용한 덕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당시 남명국교 다니던 필자도 수개의 마을 사람들이 동원된 부역에 따라 저의 아버지 대신 그곳 도로 개척에 부역을 한 바 있다. 공구는 갱이, 삽, 소쿠리, 바지게, 지렛대로써 바위길을 넓히는 험한 부역이었다.
일제시대부터 남해에 유일하게 일본 육군이 주둔하면서 험한 바위길을 이웃마을 주민들이 수주간 부역을 했던 터라, 그때부터 가천마을은 남면 면민들의 입에 올리게 된 것이다. 그때는 가천의 다랭이 논에 대한 인상은 입에 오르지 아니했다. 이유는 남해의 대부분의 산언저리 농토는 그런 형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천 다랭이 논은 가파른 경사도, 다랭이 수, 다랭이 아래 푸른 바다, 탁 터인 넓은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다는 점 등이 방문객을 감탄케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주말이면 그곳 다랭이를 감상하기 위해서 외지에서 방문하는 자가용차 행렬이 이웃마을사람들의 농사일과 보행, 자동차 소음에 신경쓰이게 하고 있다. 어차피 전국적 이름난 관광명소로 알려져 있으니까 한번 찾아온 방문객이 다시 올 수 있고, 왔던 사람은 추억으로 남겨 둘 수 있는 값진 관광소가 되어야 한다. 이 점을 필자는 다음과 같이 추가적 개발 사업을 제시해본다.
(1) 홍현리에서 들어가는 가천 도로의 커브길과 그외 넓힐 수 있는 곳은 2차선 정도로 넓혀야 한다. (2) 마을 주차장도 향촌 마을쪽 도로변을 더 넓혀 유료주차장을 개설하고, 마을 소득용으로 활용할 것. (3) 계절에 따라 해당 작물 심기 체험 장을 개설하고 방문객이 쉽게 체험할 수 있도록 장비와 옷, 신발 등을 갖추고 유료체험을 할 것.  (4) 마을 소유의 펜션을 세워 쉬어 갈 수 있는 고객에게 유료로 서비스할 것. (5) 마을 소유 휴게소를 세워 방문객에게 식사, 생선회, 차, 커피 등 유료 서비스를 할 것. (6) 가천 농토의 유기농 농산물, 채소, 해산물, 과일 등을 생산 판매할 것. (7) 유람선을 만들어 홍현과 가천사이의 바다 절벽과 바다를 관람하게 하고, 김만중 유배지 노도를 왕래하며 수입을 올리게 할 것. (8) 가천연안 바위 낚시터를 안전하게 시설하여 낚시 즐거움을 줄 수 있게 할 것. (9) 설흘산 등산길을 만들어 관광객의 등산체험을 하게 할 것. (10) 가천마을역사 간행물을 만들어 방문객에게 판매하여 관광효과를 높일 것.  (11) 다랭이 농토에 농작물 외 각종 계절 꽃을 심어 감상할 수 있게 할 것. 전남 순천만은 각종 꽃을 심어 유로관광 92%로써 누적 관람객이 290만명 된다고 했다.
이런 다양한 관광사업 개발은 일시에 하는 것이 어렵다. 장기계획을 세워 국비, 도비, 군비, 동비, 사비 등을 구별하여 순차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재정 투입 없이 자연상태만을 관광하는 것은 발전하지 못한다. 아울러 가천 주민들의 다랭이 정신과 저렴한 실비 서비스, 소박한 시골 친철로 방문객의 마음을 검어 잡아 발전해 갈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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