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남해에 들렀을 때, 일정이 끝나고 돌아오던 날 길에서의 일이다. 남면을 출발, 창선교를 지나 얼마쯤 달렸을까. 생수 한 병을 사기 위해 길가에 차를 세우고 주머니에 잔돈을 뒤적거리고 있을 때였다. 저만큼 생수를 팔고 있던 아주머니 곁에 몸집이 큰할머니께서 손짓을 하기에 외면할 수가 없어 갔더니 거두절미하고 앞에 가득 쌓아놓은 마늘을 사라는 것이었는데 그 할머니와의 일문일답이다.
“야야, 이 마늘 사가라”
“할머니, 무슨 마늘이예요?”
“야가 지금 무신 말이고, 저 밭에서 시방 뽑은 햇마늘이제 무신 마늘이겠노”
“얼마죠? 할머니”
“한 단에 사천 원인데, 두 단만 가 가라. 야가 뭘 미적거리노 퍼뜩 사라카이”
“그럼 두 단을 7천 원에 주시면 되겠네요. 할머니?”
“그랄까, 그래라 그럼”
마늘대를 말끔히 잘라 비닐 봉투에 담아주신 할머니께 만원권 한 장을 드렸더니 거스름돈을 이천 원만 주시는 것이 아닌가. 그러기에 나는 실실 웃는 여유까지 보이며,
“할머니 약속이 틀리네요, 분명 7천원에 주신댔잖아요?”
“됐다, 그만 해라 마”
“무슨 말씀이세요. 할머니께서 7천 원이라 하셨는데.....”
내가 말끝을 흐리자 할머니는 다짜고짜 버럭 소리를 질렀는데 영문을 몰라 표정을 살피던 내게 할머니는 눈 한번 마주치지 않고 차고 있는 돈주머니 끈을 조이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니는 시골 할매한테 그깐 돈 천 원도 몬 쓰나? 할매한테 맛난 거 하나 사줬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제 뭐 그깐 것으로 따지노 따지긴”
필요이상 강경했던 할머니의 어투가 재밌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여 나는 할말을 잊고 말았다. 할머니의 눈치를 살피며 주섬주섬 봉투를 들고 차로 돌아오는데 뒤통수에다 대고 할머니를 또 뭐라고 계속 소리를 치신다.
“요즘은 돈 있는 도회지 젊은것들이 더 무섭다니께. 그까짓 천 원 가지고 뭐 그리 따져 쌓고 그라는지 &#$%@*#$%#^&*......”
생수 한 병 사려고 차를 세웠다가 느닷없이 찬물 한바가지 뒤집어쓴 그런 기분이랄까? 그런데 이상한 일은 그렇게 유난스러운 할머니를 만난 일이 그 날 남해에서의 마지막 사건(?)이 되었지만 마음이 불쾌하기는커녕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 할머니 생각만 하면 혼자 실실거리며 기분 좋게 운전할 수 있었다면 믿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할머니의 화법은 독특했다. 자신의 물건을 손님에게 팔아야 하는 입장이지만 처음부터 잘 아는 손자 다루듯 반말로 일관하셨는데 평소 우리가 아는 경상도 사투리 ‘그랬노’ 혹은 ‘저랬노’도 아니고 바로 ‘야야’‘이래라’‘저래라’ 엄한 명령조로 말씀하셔서 처음엔 조금 황당했으나 차츰 남해 사람들만의 독특한 표현방식이려니 이해하게 되었다. 아니 오히려 더 친근하고 푸근하게 느껴졌다고 해야 옳을 것 같다.
오늘 아침은 남해에서 돌아온 후 뒤 발코니 바닥에 펼쳐놓고 말린 마늘을 종이봉투에 담으면서 남해의 흙 부스러기를 만지다가 할머니를 떠올리며 웃었다. 그때 사 온 마늘이 모두 없어질 때까지 조금 남다르고 특별했던 남해 할머니를 추억하는 일은 지속될 것이다. 당분간 우리 가족은 할머니가 주신 투박한 마음을 양념으로 먹는 행복을 누릴 것이다.

 「나도 여자지만 뽀얀 속살 훔치는 재미가 무슨 재미냐 그런 말은 차마 못하겠다 벗겨보면 안다 쪽마다 반들반들 모두 예쁘다//제 아무리 예쁜 애첩도 질투의 독기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인지 그녀를 벗긴 손톱 밑이 알싸하니 맵다 그러나 갈치국 한 대접 후루룩 해치운 후에야 알 것 같다 그 탱탱하고 말간 것이 으깨져 곤죽이 되면서도 제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열녀였음을」
                                    - 詩<마늘>全文 -


/김 인 자(시인·여행가)
http://www.isibada.pe.kr / kim8646@netian.com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