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선진농구 배워 한국여자팀 감독 꿈”
  
 
  
지난 5월 8일 어버이날을 맞아 고향을 찾은 하숙례씨가 부모와 함께
찍은 모습.
        
  

초등 5년, 농구공 잡다

1969년 창선면 장포마을 하찬범·박정봉씨의 2남 4녀 중 다섯째로 태어난 하숙례(36)씨는 진동초교 4학년 때 부모의 높은 교육열로 인해 진주 중안초교로 전학을 갔다.
5학년이던 어느날 그는 성격이 활달하며 신체 조건이 뛰어나고 특히 운동을 잘하던 터라 형부의 동료교사 눈에 띄어 농구를 해보라는 권유를 받게 된다. 하씨가 다니던 학교는 농구팀으로는 전국대회에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학교였기에 그는 권유를 수락, 처음으로 농구공을 잡게 됐다.
하지만 딸을 공부시키려고 유학을 보낸 터라 부모의 농구 반대는 심했다. 그는 “제가 농구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운동을 못하게끔 방문까지 잠그고 그랬어요”라며 그때의 어려움을 떠올렸다.

청소년국가대표 주장 맡다 

학업과 운동 모두를 잘하던 하씨는 6학년 때 소년체전팀 선수로 발탁될 정도로 기량이 향상되었다. 그리하여 당시 농구 명문교로 알려진 삼천포여중 농구 감독인 노재운 선생의 스카웃으로 본격적인 농구선수의 길을 걷게 된다.
여중 2학년 때 그는 전국소년체전에 센타로 출전, 팀 승리에 결정적인 수훈을 세우며 감격스런 우승을 일궈냈다.
이후 삼천포여고 1학년 때는 농구선수로서의 뛰어난 기량과 재능을 인정받아 청소년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되는 영광을 안았고, 농구코트를 활발히 누빈 결과 3학년 때에는 주장을 맡기도 했다. 그리하여 그는 주장으로서 유감없이 자신의 진가를 발휘, 1989년 1월 필리핀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농구대회에서 준우승이라는 쾌거를 달성했다. 

코오롱시절, 최고의 전성기

하숙례씨는 대학진학이냐, 실업팀으로 가느냐를 놓고 고심하다 국가대표의 꿈을 품고 1989년 실업팀 코오롱에 입단했다. 코오롱 1년차 되던 해 국가대표선수로 발탁되는 행운을 안았고, 이후 7년간 한국여자농구팀을 대표하는 선수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는 1990년 북경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4년 뒤 개최된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따 2회 연속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한껏 물오른 기량을 뽐내던 그는 마침내 국가로부터 백마장 훈장을 받는 영예를 안았고 이후 연금 수혜자로서 치솟는 몸값을 실감했다.
한편 그는 부모와의 약속을 잊지 않고 학구열에 불타 1994년 3월 한국체대에 진학했고, 4년 뒤 대학원에 진학하여 결국에는 석사학위까지 취득하는 남해인 특유의 근성을 보였다.

일본에서 지도자 길 걷다

하숙례씨는 농구선수로서 전성기를 맞아 확실한 성적을 냈고, 일본 농구계의 주목을 받아오다 1998년 4월 대학원 생활 중 일본 실업팀인 덴소여자농구단의 코치로 러브콜을 받았다.
최근 일본 실업농구 여자 8개팀 중 1~6위를 차지할 정도로 한국인 감독들이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가운데 그는 최연소이자 여성 최초로 일본 실업팀의 지휘봉을 잡아 한류열풍을 이었다.
그는 일본 덴소팀에 스카웃된 이후 지난 4월 임기 만료될 때까지 코치생활 3년, 감독생활 3년 동안 한국인 감독들과 함께 일본 농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그가 일본농구 발전에 공헌한 데에는 남편의 도움이 컸다. 일본 코치생활 1년만인 1999년 4월 그녀는 잠시 귀국해 이재춘(극동정보대 교수)씨와 결혼하고 곧바로 일본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당시 지도자의 길을 열어주고 계속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남편의 폭넓은 이해와 지원이 없었다면 일본에서의 성공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면서 “항상 친구처럼 선배처럼 도와준 남편에게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농구계 최고 여성지도자 꿈

그녀는 오는 6월 7일, 선진농구를 배우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지도자가 아닌 학생 신분으로 새로운 도전이자 고행길을 택하는 것이다. 영어를 배우고 본토농구를 익히는 것에 대한 그녀의 집착과 각오는 대단하다.
“부모님의 꿈은 제가 선생이 되는 거였어요. 농구를 가르치는 것도 선생이니까 어쩌면 저는 부모님의 꿈을 이룬 셈이죠. 물론 앞으로 한국 농구계의 최고 여성지도자가 되어야겠죠?”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고 함박 웃음을 터트리며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미래에 대한 강한 자신감과 희망을 엿보았다. 그녀가 국내 농구코트에서 한국여자농구대표팀 감독이라는 최고의 지도자로서 맹활약하는 모습을 고향 사람들 모두가 응원하며 볼 수 있길 손꼽아 기대해 본다.

                                                                            /글, 사진 이철기 본사 관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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