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터전 바다 우리가 지키자 저인망어업 포기 선도”


어민들이 생각을 바꾼다?

어민들은 당장의 생계를 위해서는 흔히 ‘싹쓸이어업’이라고 부르는 저인망(일명 고데구리)어업을 하는 게 쉽고 편하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물고기의 씨를 말리는 저인망어업이 사실은 어민들 스스로가 죽는 지름길이라는 것은 어민들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어민들은 쉽고 편한 방법에 더 익숙할 수밖에 없어 저인망어업의 굴레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악순환이 계속 돼 왔다. 저인망어업을 완전히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던 어민도 저인망어업을 포기하지 않는 한 두 사람 때문에 다시 저인망어업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도 저인망어업이 근절되지 않는 큰 이유가 됐다.

 
 
남해남부지역 어민들의 생계터전인 앵강만. 원원마을에서 본 모습이다.
 
그런데 어민들이 생각을 바꾸고 있다. 저인망어업의 굴레에서 스스로 벗어나야만 자신들의 생계터전이 지속될 수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어민단체가 바로 지난해 결성된 ‘남해군남부연안어업인협의회(회장 박표세·55)’이다.

‘남부지역’이라 함은 남면·이동면·상주면지역을 말하고 ‘연안어업인’이라 함은 어선을 가지고 그물을 쳐서 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가는 어민들을 말한다. 여기에 해당하는 어업인 수는 약 150명이며, 이들의 어업구역은 남면 가천과 항촌 중간지점에서 소치도 연안을 거쳐 상주면 나무섬을 연결하는 안쪽 해역이다. 그러나 이 협의회에는 150명 전부가 가입한 것이 아니라 30여명만이 가입해 있다.

이는 어민들 사이에 아직 인식의 차이가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들 30여명의 회원들은 ‘우리가 먼저 시작하여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자율공동체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 있다.
  
 
  
  박표세 남해남부연안어선어업인협의회장.                  
  

최근 어민들이 군 해양수산과와 수산기술관리소 공무원으로부터 귀가 아프게 듣는 말이 ‘어장과 어업의 자율관리’라는 정책용어이다. 

어민들 스스로 어족자원과 바다생태계를 보호함으로써 연안어업을 지속 가능한 어업으로 만들도록 하고 여기에 동참하는 어민들로 구성된 자율단체에게는 정책적 지원을 해주어 자율관리체계를 정착시킨다는 정책을 정부는 펴고 있다.

이 정책은 스스로 저인망어업을 포기해야 한다고 자각하고 있던 어민들이 결심을 굳히도록 큰 힘을 실어주었다. 낱개로 흩어져 있던 어민들을 공동체로 묶어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남해남부연안어업인협의회는 지난 20일 원천마을회관에서 5월 정기회를 가졌다. 이날 회의에는 군 해양수산과 담당 공무원과 남해해양수산사무소 담당 공무원도 참석했는데 이날 회의의 성과는 올해 안에 자율관리어업인 단체로 인정받도록 하자는 결의였다. 남해남부연안어업인협의회가 그동안 실천해온 것을 보면 ‘자율관리 정책’이 갖는 그 효과가 그대로 확인된다.

지난 98년부터 삼중망을 점차적으로 일중망으로 전환하기로 한 결의를 회원들이 모두 지켜 2003년부터는 삼중망이 완전히 사라졌다. 5월에서 8월까지 서대, 낭태, 조기를 주로 잡는 이들 어민들은 자망 그물코 크기 제한을 98년 67mm에서 올해에는 81mm 이상으로 정하고 있다.

이들은 “그물코를 키우면 잡는 마리 수는 적지만 값이 좋은 고기를 잡아 실제 수입은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고 말한다. 합법어업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는 처음의 막연한 두려움이 문제이지 이를 뛰어넘기만 하면 어족자원을 보호하면서도 생계는 얼마든지 유지해 갈 수 있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경험담이다.

이들의 말속에는 모든 어민들이 불법저인망어업의 유혹을 떨쳐버리고 어족자원을 보호하는 어업으로 전환하자는 강한 요구가 실려 있다. 특히, 전라도 쪽에서 떼거리로 몰려와 훑고 가버리는 저인망어선에 대해 수산당국이 보다 강력한 의지로 단속을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심지어 이들은 전라도 쪽 저인망어민들을 상대로 어업구역을 침범하지 말라는 협상까지 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들은 “전라도 쪽에서 오는 떼거리 저인망어선들을 단속하지 않으면 어족자원을 지키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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