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가 소승불교 신봉자인 크메르족이 85%를 차지하고 있는 인구 1천만의 도시. 1975년 폴 포트 정권 때 고등교육을 받은 국민다수가 대량학살과 추방으로 가족 중 누군가를 잃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는 도시. 피해의식이 강한 나라지만 대체로 수줍음을 잘 타고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미지의 도시 캄보디아에 장애인복지관경남협회의 지원으로 3박 5일 동안의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의 일정은 캄보디아의 시엡립 앙코르 와트를 중심으로 룰루오스 유적지, 반데이 스레이 사원, 미니 킬링필드, 동양최대의 톤레샵 호수 및 수상마을 관광으로 이루어졌다.

일상속의 쉼을 찾아 떠나는 일정에 들뜬 마음을 가지고 네 시간의 비행 뒤에 도착한 캄보디아는 가을에 접어들었지만 30°C가 웃도는 더운 날씨였다. 캄보디아의 역사를 담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앙코르 와트 관광!! ‘앙코르 와트’는 바로 앙코르 왕국에서 만들었던 찬란한 힌두 문화의 결정체이다. 완벽한 조화와 균형 그리고 웅장한 규모에 압도당하는 감동을 맛보게 된다. 앙코르 사원들은 3단계로 이루어지는데, 평지로 건축된 것은 마지막 단계로 갈수록 문이 작아서 기어서 들어가야 하고, 탑으로 건축된 것은 마지막으로 갈수록 가팔라져 역시 기어서 올라가야 한다. 앙코르 와트의 3층 계단은 70도의 각도를 이룰 만큼 가파른데 이는 자신의 자세를 낮추는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

앙코르 와트의 거대한 웅장함보다 나에게 가장 가슴 깊이 기억되는 추억은 캄보디아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 때문에 웃음을 짓기도 했지만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한국 관광객들을 위해 “안녕하세요. 언니. 이뻐요, 오빠 잘 생겼어요” 라는 말을 쉼 없이 하는 아이들을 보고 웃음을 지었지만 인사를 한 뒤에 “원 달라 원 달라”를 외치는 아이들. 마음이 아프게도 그 아이들의 눈빛은 이미 아이들의 눈빛이 아니었다. 세상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아이들 때문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아이들이 열대과일 씨앗으로 만든 팔찌며 기념품을 사달라고 애원들을 한다. 기념품을 구입하니 정신없이 달려드는 생존을 위한 아우성은 6.25때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 가슴이 미여왔다. 어쩌다 눈이 마주친 어린아이는 위험을 무릅쓰고 떠나는 버스를 오래도록 뒤따라오는 모습에 애써 고개를 돌렸다.

사실 캄보디아가 처음부터 못사는 나라는 아니었다. 6.25전에는 우리나라보다 잘사는 나라였다. 1975년 폴포트 정권 때 이상적인 공산국가를 만든다며 국민을 개조한다는 명분아래 지식인 정치인 등 사회 지식층을 없애면서 가난해지기 시작했다. 이때의 가슴 아픈 일들을 기억하고 있는 킬링필드 사원의 해골로 쌓은 추모탑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탑 주변에는 학살 당시의 사진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캄보디아 지도를 해골로 장식한 사진이며 곤히 잠든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에게 칼을 들이대는 모습은 당시 크메르루즈군의 잔학상을 보여 주었다.

베트남과 태국사이에서 오랜 고통을 겪었고 프랑스의 지배 속에서 살았던 나라. 베트남 전 당시 친공당으로 여겨져 10년 동안 하루 평균 6차례 폭탄이 투하되었던 나라. 폴 포트의 학살로 많은 가족을 잃었던 나라. 하지만 그 역사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나라. 그럼에도 아직까지 따뜻한 마음을 가진 국민이 있는 나라. 많은 아픔을 간직하면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은 그들의 모습에 마음 한쪽이 아팠던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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