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흔히 쓰는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사자성어는 ‘맺은 사람이 푼다’는 뜻으로 ‘일을 벌인 사람이 책임을 진다’는 말로도 쓰인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남해의 큰 논란은 누가 풀어야 할 문제인지 생각해 본다.
몇 개월째 남해를 시끄럽게 하고 있는 산지약용식물 보조금 비리사건으로 공무원들과 군수부인이 유죄판결을 받은데 이어 군내 일부 단체에서 이와 관련해 정현태 군수를 수사하라는 고발장을 접수했다. 정 군수는 이에 맞받아 기자회견을 열고 ‘받지도 않은 돈을 받았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며 ‘당사자들과 가족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 보조금에 대한 사후관리를 소홀히 한 행정적?도의적 책임이 있어 사과한다’면서도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들에 대해 ‘상식의 범위를 한참 벗어난 자해행위를 중단하라’며 강경대응 태세를 보였다.
정 군수를 둘러싼 갈등의 2라운드가 전개되는 모습이어서 보기에도 민망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정 군수를 비호하는 쪽에서는 비리사건의 1심 유죄판결에 대해 ‘아직 상소절차가 남았고 대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는 죄인으로 낙인찍어서는 안된다’며 ‘군정이 흔들려서는 안되므로 다음 선거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또 ‘뇌물을 주었다는 유귀동씨의 진술만 믿고 내린 성급한 판결이었다’며 재판부의 신뢰성에도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비리사건의 재판에 대한 주장을 하기 전에 짚어보아야 할 문제가 있다.
유귀동씨 진술의 신빙성에 문제제기를 하기 위해서는 ‘뇌물을 주었다’고 자백한 유씨가 이런 진술을 함으로써 어떤 이득이 생길까. 상식적으로 군수부인에게 뇌물을 주었다고 자백하면 죄가 더 커질 뿐인데 이런 자백을 한 또 다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면 유씨의 진술이 거짓임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군수부인의 변호인들은 돈 인출 날짜 등의 사소한 진술 불일치만으로 신빙성 문제를 제기했을 뿐이다. 유씨가 정 군수와 부인을 음해하기 위해 거짓 진술을 했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
형사소송법에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명시해 놓고 있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증거의 증명력을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한다는 ‘자유심증주의’도 명시하고 있다. 정 군수 쪽에서는 신빙성없는 증언만으로 유죄판결을 했다고 하지만, 유씨의 진술을 탄핵할 만한 이유를 발견하지 못한 법관의 판단은 무시되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어떤 경우에는 항소를 하면 무죄판결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형사재판의 1심 불복 항소율은 33.5%이며 이 가운데 무죄 판결을 받은 사건은 2% 정도에 불과하다. 전체 형사재판의 대략 0.7% 정도가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대법원에서는 2심 상고율 33.5%의 3.9%만이 파기선고를 받는다.(파기는 무죄란 말이 아니라 재판을 다시 하라는 말이다.) 이 통계에 따르면 1심에서 유죄를 받은 사람이 다시 무죄 판결을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단 말과 같다. 단지 형량조정은 다소 받는 것이 파기선고의 대부분이다.
필자와 많은 군민들도 군수부인과 공무원들이 항소심 무죄판결 0.7%에 들어가기를 바란다.
‘무죄추정의 원칙’이란 것은 재판부도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원칙이다. 모든 사람은 이 원칙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그렇지만 군수와 그 부인, 공무원이란 공인의 입장을 놓고 본다면 이처럼 논란이 확대되고  뇌물수수여부와는 관계없이 있는 사건에 대해 진실성있는 사과와 책임지려는 노력을 먼저 보여야 군민들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노력이 선행될 때 군정 발전을 위한 화합도 가능하고 믿음도 생기는 것이다.
정 군수는 기자회견문에서 ‘받지도 않은 돈’이라고 명시해 이후 법원의 판단과는 관계없이 결백을 주장할 태세다. 또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주장만 할 뿐 그 이후에 대한 책임성있는 말도 없다.
군민들은 민심을 두려워 할 줄 알고 겸손하며, 자신과 남해의 일을 책임지는 헌신적인 모습을 가진 군수를 볼 때 믿음과 존경심을 가진다. 정치현실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는 반대파를 탓하지 말라. 책임자가 매듭을 풀지 않으면 누가 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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