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 보리암에서 내려다보면 어느 해변 못지 않게 아름다운 비경을 보여주는 그곳이 바로 미조 앞 바다와 상주해수욕장, 송정해수욕장이다. 이 두 해수욕장은 해안선이 길고 고운 모래사장과 수심이 얕아 해수욕장으로 적격이다. 앞 바다는 크고 작은 섬들이 둘러싸여 파도가 거의 없어 천혜의 자연조건을 가진 곳으로 나무랄 데가 없고 포구에 담긴 물은 고요하여 푸르고 맑은 호수를 연상시킨다.   
이 두 해수욕장은 상주면 금포마을을 사이에 두고 서남향으로 나란히 있고 뒤로는 금산이 앞으로는 작은 나무섬이나 돌섬들이 있어 어느 곳보다 정겹고 다정다감한 풍경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해수욕장의 첫째 조건인 수온이 높고 수심이 얕은 맑은 바다와 그에 걸맞는 나무 그늘 등을 고루 갖춘 해수욕장이라 추천할만하다. 반달형으로 그려진 은빛 백사장을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없는 늦가을이나 겨울에 걸어보면 그 맛이 특별하다. 그러나 해변을 둥글게 감싸고 있는 숲은 밀려오는 파도와 함께 그 자체로 신선한 그림이다. 또한 시야를 크게 가지면 바로 뒤에 어머니 품 같은 금산의 바위절경은 아무리 봐도 싫증나지 않아 남해만의 분위기를 새록새록 더해준다.
특히 설리마을을 돌아 나오는 언덕에서 만나는 송정해수욕장이나 금포마을을 돌아 오르면서 만나는 상주해수욕장의 풍경은 누구라도 차의 핸들을 놓고 뛰어들고 싶은 유혹을 피할 수 없다. 눈썹모양의 해안선과 비취빛 바다는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이다. 더욱이 전국 최초로 선보인 송정해수욕장의 생태주차공원과 해변을 따라 자라고 있는 야자수 등은 청정한 바다와 조화를 이룬다. 햇빛 좋은 날 잘 가꾸어진 나무 그늘 아래 자동차를 세우고 한나절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고 야자수 밑을 맨발로 산책하는 것도 좋다. 해수욕장에 생태공원이라는 말은 아직은 매우 생소한 단어에 속하지만 그래도 송정해수욕장에 등장한 생태공원은 청정남해의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청신호나 다름없다. 여름 한철 피서객들이 도처에 남겨두고 간 흔적들은 시간을 보탠 사람들의 노력과 자연만이 치유해 줄 것이다. 해를 거듭하면 할수록 생태공원의 역할은 더욱 진가를 발휘할 것이지만 어느 것 하나 관심을 갖고 더불어 힘을 모으지 않으면 어려운 건 당연하다.

  
 
  
 
  


   
 규모 면에서 단연 압권인 상주나, 송정해수욕장에 서면 마음이 후련하게 트이는 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좁은 도로를 따라 갯바위의 해안가를 돌다가 이곳 해수욕장에 들면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후련해지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특히 이곳은 작은 섬들이 높은 파도를 막아 호수처럼 정적인 느낌을 줌과 동시에 넓은 해수욕장이 시야에 들어와 안정된 분위기를 선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에다 여름의 추억을 묻어두고 떠난다. 그러나 여름에 묻어두고 간 추억을 찾아 겨울에 다시 오지 않을 수 없는 곳 또한 이곳이다. 여름이 활기로 넘쳐 해수욕장답다고 한다면 겨울은 홀로 걷고 사색하는 그 반대의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해송가지에 이는 바람소리로 복잡했던 머리를 식히며 가족과 더불어 겨울 휴가를 보낼 수 있다면 예기치 못했던 마음의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겨울바다는 여름에 눈독들여놓은 전망 좋은 방을 쉽게 구할 수 있고 물가 또한 안정적이라 누구에게나 휴식의 부담이 한결 줄어들 것이다.     
상주해수욕장 소나무 매점에서 만난 친구는 전날 서울에서 내려온 나홀로 대학생이었다. 그는 고속버스를 이용해 남해에 도착한 후 가장 먼저 들른 곳이 상주해수욕장이라 했다. 이유를 묻자 인터넷자료를 뒤지다가 가장 크게 유혹을 받았던 곳이라나. 나는 그에게 며칠 남해에 머물 계획이라면 다음 날 새벽에는 금산에 올라가 일출을 보고 힘이 들더라도 차편을 적게 이용하고 많이 걸어서 작은 포구가 있는 어촌을 둘러보면 좋을 것 같다는 조언을 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안내해주는 알려진 곳보다는 자신의 발로 새로운 곳을 찾아가는 여행일수록 젊은 친구에겐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눈과 귀를 빌리지 않고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자신의 귀로 듣는 것. 그리고 언젠가 몸과 귀를 초월한 자신만의 세상을 갖는 것. 그건 진부한 것 같으나 여행이나 삶에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을 뽑아주며 남해에서 보내는 시간이 의미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어미로써 마치 아이에게 타이르며 부탁하듯…,  그는 무엇을 바라고 친구도 없이 홀로 그 바다를 찾아왔는지, 볼일이 끝나 내가 금포 방향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는 백사장의 같은 자리에 붙박힌 듯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앞으로 그가 만날 세상이 상주바다보다 몇 갑절 더 크고 넓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나는 미조항으로 차의 핸들을 돌렸다.  

   
/ 김인자(시인·여행가) http://www.isibada.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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