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진석 향우가 남해대교 아래 작은 포구가 정유재란 당시 부서진 배를 수리했던 ‘구지판옥선정박터’ 라며 설명하고 있다.
미조 조도 출신 강진석 향우(하동 금남, 76세)가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통신망으로 사용했던 구체적인 연락망 체계와 정유재란 당시 부서진 배를 수리했던 포구인 구지판옥선정박터를 발견했다며 본지로 제보했다.

그는 하동 금오산 850m 석굴암(돌절)을 시작으로 900m 달바위, 신기마을 뒷산 태봉, 미법마을 산성, 이어 최종적으로 동시에 전해지는 신노량 망려리(望麗里), 설천 감암마을 등이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부하들과 적군의 동태, 접근을 감시하며 연락을 주고 받던 곳이라 설명했다.

또한 남해대교 아래 작은 포구는 ‘구지판옥선정박터’이며 전쟁으로 부서진 배를 수리하고 정박해놨던 터로 이순신 장군이 그 당시 12척의 배를 끌어모아 정비를 하고 이후 명나라 진린과 연합으로 노량으로 출전했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강진석 향우는 “‘구지판옥선정박터’의 ‘구지’ 사전적 의미는 ‘적에게 발견되기 어려운 곳’으로 실질적으로 실질적으로 그 곳은 숲이 우거져 있어 하늘이 잘 안보였다”며 “이순신은 장군선 안에서 전쟁 시 일어나는 사항들을 모두 체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처럼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곳이 파묻히는 것이 안타깝다”며 “군내 거주하는 향토사학자나 역사학자들이 이순신과 관련해 많은 연구를 이어갔으면 한다”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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