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열도의 대지진으로 인한 재앙 관련보도가 연일 지면을 뒤덮고 있는 와중에, 우리 지역 교육계에 사건이 발생했다. 몇 군데 언론의 기자들이 상황을 전하면서 필자의 견해도 물어보곤 했는데 사단의 개요는 이런 것이다.
학부모들이 입학식 날 신입생들을 대거 다른 학교로 전학을 시켰는데 그 수가 예년과 달리 많아서 학생을 빼앗긴(?) 학교는 학급이 하나 축소될 지경으로 학사 운영에 지장이 많다는 것인데, 전입생을 받은 학교는 학부형과 학생들의 자의적인 선택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인 모양이다. 또 오늘 아침 방송에 의하면 이렇게 전학한 학생들의 주소를 찾아가 보니 상당수 학생들이, 사람이 살지 않는 건물이거나 펜션 같은 곳으로 전입되어 있어 위장 전입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필자의 경험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첫 번째 이야기는 딸아이 이야기이다.
필자가 살아온 곳은 남해 인근의 작은 읍인데, 중학교가 남중과 여중 하나 씩 있었다. 그러니 선택의 여지가 없이 초등학교를 마친 남학생은 남중으로 여학생은 여중으로 진학을 했는데, 여학생을 가진 부모들은 고민이 많았다. 공학인 남중은 별 문제가 없었는데 사학인 여중은 건물도 낡고, 교사진도 학부모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재단도 육영 의지가 별로 없어 보여서 이른바 ‘비 선호 학교’였던 것이다. 결국 이 여중학교는 후에 재단이 운영을 포기하여 공학으로 전환되어 학교도 옮겨 짓고 하여 그야말로 면모를 쇄신하였다. 
  
이 여중이 공립으로 전환되기 훨씬 전에 딸아이가 초등학교를 마치게 되면서 필자의 고민이 현실화 되었다. 딸아이가 자신의 친구들이 가는 진주 시내로 진학시켜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주위의 웬만한 집에서는 여식들을 지역의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진주로 진학을 시켰던 것이다. 대부분 위장전입이란 절차를 밟아서이다. 
딸아이를 설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아이의 뜻을 꺾고 기어이 지역의 여중학교로 진학을 시켰다. 그러면서 딸아이에게 이런 말을 했다.
“얘야, 네 마음은 안단다. 나쁜 학교로 소문난 학교 가고 싶지 않는 마음을. 그리고 솔직히 아버지도 그 학교에 사랑하는 딸을 보내고 싶지 않단다. 또 친구들과 같이 진주의 좋다는 학교로 가고 싶은 네 마음도 안다. 그러나 말이다. 공부란 것은 스스로가 하는 것이지, 결코 선생님이나 학교가 해 주는 것이 아니란다. 더욱이나 너를 진주로 보내려면 위장전입이란 위법한 행위를 해야 한단다. 어린 너를 범법 행위에 가담시키고 싶지 않구나. 이것이 솔직한 아비의 심정이다. 지금은 이해를 못하겠지만 나중에 자라면 아버지의 마음도 이해가 될 것이고 남 앞에서는 물론이고 특히 네 자신에게도 떳떳해 질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남해에 부임해 온 뒤의 이야기이다. 작년 학기 초 쯤에 지인이 한 사람을 대동하여 학교로 찾아왔다. 그리고 그 사람을 소개하기를 부산에서 남해로 전출 온 공무원인데 아이를 우리학교로 전학을 시키고 싶어 하기에 상담 차 왔다는 것이다.
“ 아이를 우리 학교로 보내고 싶다고요?”
“ 네, 부산 시내 도시의 초등학교를 나왔는데 정서적으로 삭막하고 황폐해 질까봐 걱정을 하다가 풍광 좋은 남해가 아이 교육에 좋을 것 같아서 찾아 들었습니다. 와 보니 교장선생님 학교가 좋다고 소문이 나서 전학을 시킬까 하는데 허락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 학부모는 보기에도 건강해 보이고 이야기도 반듯하게 잘하여 호감이 가는 사람이었다.
부산에서 읍내로 이사를 해서 아파트에 거처도 마련하고 아예 남해 사람이 될 모양이었다.
“우리 학교 입장에서는 학생 전입을 환영합니다. 그런데 지금 거처하시는 곳이 읍이군요. 거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대중 교통편으로 통학을 하는 것이 용이치 않을 것입니다. 아이의 통학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 매일 집 사람이나 제가 통학을 시킬 작정입니다.”
“ 그럼, 별로 권하고 싶지 않군요. 생업을 가진 분이 매일 아이의 통학에 매이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 아닐듯하고, 기왕에 호연지기를 찾아 남해로 오셨으면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풀어 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그러자면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현재의 읍내 학교 더 좋아 보이는데요. 그리고 우리 학교가 언론에 몇 번 노출되고 해서 마치 굉장히 좋은 학교인양 환상을 가질 수도 있는데 실제론 학교란 대동소이하답니다. 매일 통학 시키겠다는 정성으로 현재의 학교에 자녀를 보내면서 잘 보살피면 성공할 것입니다.”

매일 자가 운전으로 통학시키기도 처음에는 재미도 있겠지만 세월이 지나 나중엔 힘들기도 할 것이고 귀찮아 지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아이 교육마저 귀찮아 지면 안 되는 일이잖은가? 자연스런 일이 가장 좋은 일이고 교육이란 무엇보다 가장 자연스러워야 할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이 사건을 알려주면서 필자의 판단을 듣고자 했지만 듣지 못했던 기자들에게 이 두 사례가 답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사족으로 말하자면 우리 학교에서도 입학식 날 두 명의 신입생이 앞의 그 학교로 전학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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