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差異)를 인정(認定)하면 해법이 보인다
차이(差異)를 인정(認定)하면 해법이 보인다
  • 남해신문
  • 승인 2010.12.24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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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히 많은 사연과 사건들을 남기고 한 해가 저물어 간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결과가 만들어졌던 커다란 숙제를 남기고 아쉬움으로 다음을 기약해야 하던, 금년 한 해는 유례없이 굵직굵직한 문제들로 시련을 겪은 해였다.
이맘때쯤이면 흔히들 송구영신(送舊迎新)이란 말을 즐겨 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일정 선을 그어 구획을 정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는 아니다. 단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약속이다. 일정기간을 정하여 그동안의 삶의 궤적을 추억해보고 공과에 대한 스스로의 진단을 통하여 내일을 준비하기위한 수단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해 모든 걸 새롭게 정립하여 지난날의 과오가 내일로 이어지지 않기를 다짐하고자 이 시점을 송구영신하는 때로 정함은 그 뜻이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보내는 경인년에 대해 필자에게 문제를 되짚으라면 차이를 인정하지 못해서 발생했던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한 해법이 없었던 골 깊은 갈등을 지적하고 싶다.
필자 개인의 경우만 해도 거듭되는 모임과 건강을 해치는 음주로 인하여 아내와 잦은 갈등으로 신경전을 무던히도 벌였던 한해였다. 대도시에서 예술을 전공했던 아내의 삶과 시골 작은 학교를 나와 고향에서 살아왔던 필자의 삶은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수많은 사람 중에서 선택권을 가진 아내의 경우와 전부라고 해도 몇 안 되는 필자의 경우 선택의 삶이 아니라 무조건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불가피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리저리 수많은 모임에 불려 다니다 보면 집 안 일에 소홀하게 됨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이해해 줄 것을 당부하였지만 아내의 입장에선 도무지 수용하기가 어려운 일이었다. 삶의 가치에 대한 사고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농협과 시장상인과의 갈등도 그렇다. 강자와 약자의 싸움이라고 하면서 서로의 논리를 전개했다. 그러나 강자와 약자에 대한 주장은 판이하게 달랐다. 어떤 이는 사업의 운영주체에 대한 힘의 논리로 접근했고 또 어떤 이는 구성원들의 개별적 주체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어 반대의 논리를 펼치기도 했다. 관찰자의 자기 입장에서 모든 걸 판단하고 역지사지하여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팽팽하게 대립하며 갈등했다.
군수선거를 두고 벌어졌던 첨예한 대립에 있어서는 더욱 그랬다. 치열한 접전 끝에 막을 내린 선거답게 그 과정과 선거 직후의 갈등양상은 근래 보기 드물 정도로 깊은 상처를 우리에게 남겼다. 출마했던 후보모두가 지향하고자하는 목표는 동일하였으나 목표를 위한 수단에 있어서는 서로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고 군민을 위한 방법의 차이를 이해하기 보다는 허점을 공격하기에 바빴다. 그 결과 법적 시비가 진행되었고 아직도 일부는 군수를 상대로 법적공방을 펼치고 있다. 대승적 차원에서 보면 중요사안을 처리하기도 바쁜 시기에 내부의 소모전을 소화하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한창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 연평도 해전의 경우도 그렇다. 지난 달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만신창이가 된 우리의 영토와 주권에 대하여 정부는 과감하고도 단호하게 대처하는 게 맞다 판단하고 국방장관을 교체했고 북한의 보복통보를 무릅쓰고 서해상에서 대북해상훈련을 감행하였다. 국가적 중대 사안 임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생각은 매우 달랐다.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은 주권사수를 위한 필수적 조치이며 다소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우리의 확고한 자위권에 대한 의지를 천명하여 명예를 회복하여야 한다는 것이었고,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의 경우엔 필요이상으로 북한을 자극하여 국민의 안위를 위험으로 빠뜨릴 수도 있다며 사격훈련자체의 시도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았다.
이처럼 동일한 사안을 두고도 판단에 대한 서로의 생각차이는 극과 극을 치닫는다. 마치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언쟁과도 같다. 상대를 살펴 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가에 대한 파악이 선행되지 않으면 인정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인정하지 못하면 본질적 문제의 해결보다는 말꼬리를 붙잡고 서로의 주장에 대한 흠집 내기로 불필요한 소모전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상생이나 공동의 발전을 위한 목표의 달성을 놓고 판단해보면 득보다는 실이 많게 된다. 국가나 지자체의 경영을 두고 벌이는 논쟁을 보면 그 식상함에 국민들은 넌더리를 칠 지경이다. 해법을 찾기 위한 협상은 없고 내 편의 주장이 무조건 옳다는 에고이즘이 우리사회를 병들게 한다. 오늘의 우리 주변에서 흔히 경험하고 있는 실제상황이다.
농협과 시장상인들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상생의 지혜를 구함으로써 우리에게 배려를 통한 나눔의 아름다움과 희망을 선사했음을 기억하자. 물론 행정의 탄력적 대응이란 변수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도 큰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필자와 같이 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잡다한 개인적 갈등도 마찬가지다. 수십 년 습에 배인 절제되지 못한 행동에 대하여 차분하게 설명하고 아내의 입장에 서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이기적 사고에 대한 자기모순을 인정하였다. 아내도 자기의 기준으로만 판단했지 필자와의 차이를 생각지 않았던 경솔함에 미안해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 몸이 되어 새로운 사랑을 만들어 가기로 했다.
차이를 발견한다는 것은 타협의 시작이다. 서로 양보하고 이해할 때 인정된다. 그러면 해법은 자연적으로 생기기 마련이다. 개인 간의 사적 충돌을 떠나서 남해군의 문제가 되던 대한민국의 문제가 되던 인간이 가진 슬기로움으로 탄생된 송구영신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의 미래를 위한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자. 그래서 다가오는 신묘년 새해에는 골 깊은 앙금들은 모두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움 만으로 거듭 날 수 있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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