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맞이하는 남해의 가을이 힘겹다.
과거 총선 당시 정몽준 의원이 남해에 왔고 한나라당 후보 유세장 뒤에는 조선소 관련 스크린이 쉼 없이 돌아갔다. 그 모습을 많은 군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요트, 크루즈 등 부가가치 높은 ‘미래형조선소’가 남해의 희망이며, 이를 반드시 성공적으로 만들어 보이겠다며 밀어달라던 후보자의 유세도 기억한다. 지난 남해군수 보궐선거에서 이번 군수선거까지 줄기차게 외쳤기에 최근 삼성이 공동사업약정서를 백지화를 선언하는 순간까지도 그렇게 미래형조선소는 후보자와 남해군의 화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에 와서는 ‘앞으로 조선경기는 기대할 수 없으니 남해에 투자할 수 없다. 남해와의 공동사업약정서는 백지화하겠다. 응당 보상을 요구하라’는 말로 두 가지 모습이 일단 정리됐다.
약 4년이란 시간은 짧은 세월이 아니기에 그간의 기다림과 그들이 주었던 희망을 뒤돌아보면 군민들의 눈초리는 남해사회의 지도층들에게 곱지가 않음은 자명한 일이다.
그런 가을에 ‘군수가 군민을 고소한 데 이어, 이번에는 군민이 다시 군수를 고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기에 각종 언론들은 이를 전국에 보도하며 앞다퉈 알려 나가고 있다.
선거는 이미 끝났지만 아직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진실에 대한 규명 작업을 진행 위한 것이라 당사자는 말하고 있다.
선거 이후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내부적으로 갈등이 정리되고 봉합할 그런 일들은 아니었거나 문제 해결의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군수가 군민을 고소한 데 이어, 이번에는 군민이 다시 군수를 고소하는 사태는 끝없이 평행선을 이어나가고 있는 가을을 맞은 남해의 서글픈 현주소다.
치유되지 않은 봉합된 상처는 언제든 어떤 형태로 터질지 모른다.
지금이라도 상처를 겁내기보다 공개된 자리에서 모든 군민이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아 매듭짓고 가야 한다.
이런 이유로 본지는 수차에 걸쳐 선거과정에서 불거졌던 문제를 공개적인 자리에서 허심탄회하게 풀어보자고 제안한 바 있다.
투명한 사회와 남해를 만들기 위해 힘들더라도 치뤘어야 할 통과의례였기 때문이다.
남해군 인구가 5만 선에서 4만 선으로 무너진 시점에 농협은 살기위해 하나로마트를 짓겠다고 발표하고 재래시장은 시장의 문을 닫더라도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막겠다고 한다.
과거 7만, 8만의 인구가 모여 살던 시기에는 이처럼 극으로 치닫는 대립각을 볼 수 없었기에 안타깝기만 하다.
이같은 사태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지역경제를 돌릴 인구가 이제는 없다는 위기감의 표출이다.
따라서 서로를 죽이는 공멸이 아니라 서로의 영역을 지켜주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대안을 누군가 제시하고 이끌어 주는 그런 지혜가 무척 아쉬운 남해의 가을이다.
지금의 남해의 가을은 ‘끼리 끼리’문화 속에 점점 반목의 골이 깊어 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남해를 걱정하는 사회 지도층의 목소리는 별반 들리지 않는다. 침묵은 더 이상 금이 아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뭉쳐 다니는 모습보다 많은 군민을 포용하고 그들의 아픔을 해결하는 자세가 아쉽다.
일각에서는 사회지도층을 비롯해 생업에 종사하는 주민들까지 너무나 자주 모여 다니는 ‘남해사회의 그들만의 한계’를 자주 본다고 한다.
‘끼리 끼리’도 필요하지만 지금은 더 큰 ‘사회 통합’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사회 통합과 화합’은 말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계절이 바뀌듯이 남해의 서글픈 단상도 조만간 바뀌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그러나 그런 희망도 ‘끼리 끼리’문화로는 찾을 수 없다.
더 큰 가슴으로 더 큰 희망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작은 집단이든 큰 집단이든 우리사회에 팽배해 있는 ‘집단이기주의’는 남해의 발전에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가을 추운 겨울을 지나 새로운 봄을 다 함께 그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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