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년전 남해에 차(茶)가 있었다’
‘1300년전 남해에 차(茶)가 있었다’
  • 허동정 기자
  • 승인 2010.06.2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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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상 국내 828년 들어와, 남해엔 600년대 추정
남방 도래설, 신라 때 이미 차 문화 있었을 수도

남해는 실상 차와 관계된 지명과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는 내용이 제법 있다.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남해는 현재 조사된 도자기 가마터 13개 중 차와 관련 있는 자기를 구운 가마터가 9개로 파악돼 있는 점과 원효대사의 보리암과 용문사 창건 설화 등은 차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지만, 남해엔 차에 대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금산의 야생차와 함께 이동면 다정마을과 다천마을, 용문사 등이다.

또 일본 국보로 유명한 천하대명물 ‘이도다완(조선 막사발)’ 등과의 연관성 등도 진주지역을 위주로 남해 또한 포함돼 논란과 논쟁, 논의가 있었지만 정작 남해군에는 알려지지 않은 듯싶다.

특히 고려시대 대문장가 이규보의 시(詩) 인론화계채다시(因論花溪採茶詩)에 표현된 화계(花溪)란 지명이 남해와 관련됐을 가능성과 이도다완 분포지 중 한 곳으로 남해가 거론되는 것 등은 향후 보도 예정이다.
먼저 이동면 화계리 ‘다천’과 ‘다정’이란 지명이다. 이 지명에서 ‘다’는 ‘차(茶)’를 뜻하는 말이고 ‘차’나 ‘다’로 읽는다.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이동면에서 다천사(茶川寺)를 창건한다. 이 다천사는 나중에 용문사와 합쳐지지만 다천마을는 ‘동네 앞을 흘러가는 냇가에 작설(雀舌) 차(茶)나무가 많이 있었으므로 다천(茶川)’이라고 지명이 유래한 것은 이 마을 주민들이라면 대부분 아는 내용이다.

원효대사가 절을 짓고 그 이름을 ‘다천사’로 지었다는 것은 남해가 차와 무관한 지역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다. 즉 남해의 차 문화와 역사는 1300여 년 전부터 이어왔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지만 이에 대한 정보나 자료, 논의는 미미한 수준이다.

1200년 전 당나라로부터 차가 들어왔다는 공식적인 삼국유사의 기록이 있지만 유추컨대 남해는 삼국유사 기록 이전인 1백수십년 전에 이미 차에 대해 추론할 수 있는 역사와 설화가 존재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원효대사는 신라의 차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고려 대문호 이규보가 쓴 동국이상국집 남해월일기 차와 관련한 시(詩)가 있다. ‘사포라는 원효스님의 시자가 원효스님에게 차를 드리려는 물이 없어 걱정하고 있을 때 갑자기 바위틈에서 좋은 물이 솟아나와 이것으로 차려 달여 올렸다’는 시가 그것이다.

또 설총은 아버지 원효에 의해 출중한 다인(茶人)이 되어 신문왕(681~691)께 화왕계설화(花王戒設話)를 강론하는 데 그 내용 중 ‘....차와 술로 정신을 맑게 한다’는 기록을 남겼다. 정사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당시 차에 대한 숱한 기록 중 남해와 연관돼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임은 틀림없다.

이런 것 등으로 보아 원효와 차는 깊은 연관성을 지닌 인물이고 남해와 연관성이 깊은 원효대사의 다천사는 차와 뗄 수없는 관계가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다천사란 이름을 원효대사가 그냥 지은 것은 아닐 것이고 당시 이 다천마을에 차가 있었든지, 차씨를 파종해 차나무와 관련한 ‘그 무엇’이 있었음을 방증하거나 차와 관련된 원효의 자발적 이름 짓기 등으로 유추 또는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서기 617에 태어난 원효대사는 686년에 입적했다. 661년(당나라로 유학을 떠날 때) 이후 본격적 활동을 한 시기로 본다면 683년(신문왕 3)은 원효대사가 남해 금산에 초당(현 보리암)을 짓고 수도한 시기다. 이를 감안해 600년대 이전이나 그 당시에 이미 남해에선 ‘차(茶)’라는 말이 있었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공식적으로 한반도에 차가 들어왔다는 기록은 삼국사기에 있다. ‘흥덕왕 3년(828년) 당나라 사신으로 갔던 대렴이 차 종자를 가지고 오자 왕이 지리산에 심게 했다. 차는 선덕왕(632~646)때부터 있었지만 이때에 이르러 성행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공식 기록인 829년(삼국유사 기록)보다 150년 전에 이미 남해에는 차나무와 관련한 사찰명이 쓰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삼국사기에 ‘....선덕왕(632~646)때부터 있었지만....’으로 기록된 그때가 또 원효대사가 살았던 시기와 일치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남해의 차나무 유래는 가야국 김수로왕의 아내 허황옥으로부터 전래되었다는 남방전래설과 원래 한반도에 차가 처음부터 자생했다는 자생설의 방증적 근거로 사용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다천마을 인근의 이동면 다정마을도 차(茶)와 관련된 지명이다. 차와 정자가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다정으로 쓰이고 있다. 마을의 유래나 지명의 바뀜이 없었다면 이 마을의 이름은 차와 관련돼 1000년 이상을 내려온 이름이란 것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즉 남해의 차 문화는 대렴에 의해 중국에서 건너왔든지, 남방에서 전래되었던 간에 최소 1000년의 세월을 넘어 온 문화란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다천사와 합한 용문사는 말할 것도 없고, 최근 발견된 금산의 야생차군락지도 이런 남해의 차 역사와 관련해 크게 무관치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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