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1. 중국무역보복조치로 마늘값 휘청

올 한해 남해마늘은 많은 시련을 겪었다.
중국산 냉동마늘의 대량 수입으로 국내 마늘값이 하락했다. 한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마찰 과정에 마늘값은 또 한 번 주저앉았다.
결국 중국과의 굴욕적인 마늘협상이 이뤄짐에 따라 올해 마늘값은 예년에 비해 크게 저조했으며 농민들의 호주머니 사정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2. 농가부채특별법 제정하라!

2000년 한해가 저물어 갈 시점, 농민들은 피폐된 농촌의 현실을 더 이상 방기할 수 없다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11월 21일 '농촌경제 회생을 위한 100만 농민 궐기대회'가 남해에서도 열렸다.
남해대교에서 경찰과 거세게 충돌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정부가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않자 투쟁은 장기화되었다. 농민들은 농가파산을 선언하고 농기계반납투쟁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남해농민들도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군 청사에서 철야농성을 벌였다. 남해농민들은 휘청거리는 마늘값과 농가부채, 농촌파탄이라는 어둠 속에서 한해를 마무리 했다.


<어업>
3. 추락하는 수산업

한·일어업협상으로 축소된 어장, 연안어장 파괴, 유가 인상, 경기침체 등으로 군 수산업이 최대 위기를 맞았다. 수 십 억 원씩 감소 추세를 보이던 수협 위판고는 올 들어 180억(2000년 10월 현재, 97년은 310억)원까지 추락했다. 특히 고소득 업종인 피조개와 정치망의 어획량이 급격히 떨어졌으며 가두리 양식장도 연말 홍수출하로 가격폭락이 우려되고 있다.
위축된 어업현실에다 어업분쟁도 늘었다. 올해는 정치망 업자와 어촌계 사이의 분쟁이 끊이질 않았다. 그리고 현실성 없는 새우조망어업의 허가는 '탁상행정'이란 눈총을 맞기도 했다.


<자치>
4. 16대 총선, 박희태 의원 당선

4월13일 16대 총선에서 박희태 한나라당 후보가 3만8615표(59.6%)를 획득, 4선 의원이 되었다.
낙선운동이 활발했던 16대 총선, 하동·남해선거구에서도 5명의 후보(박희태, 정현태, 정순관, 남명우, 최종림)가 열띤 경합을 벌였다. 애초 박희태 한나라당 후보와 정순관 민주당 후보의 경쟁구도가 예상되었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무소속 정현태 후보의 약진이 눈에 띄었다. 유세장에선 송아지론과 무능론, 세대교체론 등 후보들간의 입씨름이 오갔지만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선거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정치권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으로 71.3%라는 사상 최악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사회>
5. 남해군 인구 5만으로 '뚝'

2000년 11월말을 기준으로 인구 5만명 시대가 찾아오고 말았다. 올 11월에 실시된 인구총조사 결과 남해군에 거주하는 실제 인구는 총 5만2130명으로 집계됐다. 지난 64년 13만7000여명 비하면 40년만에 절반 이하가 감소된 것이다.
게다가 노령인구 증가와 출산율 저조까지 겹쳐 앞으로 인구 감소는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다. 인구 감소와 함께 남해를 떠나는 금융업계도 늘고 있다. 국민은행 남해지점이 출장소로 격하되다가 결국 폐쇄한다는 결정을 내렸고 경남은행도 올해를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다. 한편, 농어촌 학생들의 숫자도 감소해 학교통폐합이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스포츠>
6. 전국 스포츠대회 줄줄이 개막

169개팀 참가, 585경기가 벌어진 제1회 전국초등축구대회가 8월 8일부터 일주일간 열렸다. 풀 리그 방식, 잔디구장 제공 등 '한국축구의 실험무대'라는 평을 받았다.
대회 기간 동안 숙박·음식·주유소 등 서비스 업종들은 밀려온 손님 덕분에 잠시나마 호황을 맞이했다. 선수단이 머문 민박집이나 마을회관에서 미담들이 흘러 나와 남해인들의 따뜻한 온정이 전국적으로 알려진 계기가 되었다.
월드컵조직위원회가 방문해 공식 캠프 선정 가능성을 점쳐 주었다. 군은 12월 말 캠프 범군민 유치위원회를 발족시키는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밖에도 대한야구캠프가 9월 개장해 프로선수단 전지훈련 장소로 사용되었고 궁도나 게이트볼 전국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환경>
7. 주변 환경오염 시설에 남해는 무방비

광양만·강진만 어민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던 하동화력이 결국 대형사고를 내고 말았다.
10월 10일 40만평에 달하는 하동화력 석탄재 매립장의 둑이 붕괴, 인근 농경지와 광양만, 강진만을 파괴했다. 굴, 피조개, 가두리 양식장에 큰 피해가 발생, 남해 어민들의 분노를 폭발됐다. 또 9월 24일 여천공단 유기화학물 제조공장이 폭발, 2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두 사고로 남해군은 외부 환경오염시설의 직접적 또는 잠재적 피해대상지역임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오염시설에 대한 실질적 대책이 마련되지 않아 여전히 남해는 대형사고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음을 확인시켜 준 한해였다.





<문화역사>
8. 문화체육센터·향토역사관 개장

남해는 항상 '문화의 불모지'라는 오명을 들었다. 문화체육센터와 향토역사관이 개장해 군민들을 위로한 한 해였다. .
하지만 문화체육센터는 운영방안 부족으로 그나마 있는 공간도 놀려야 했고 향토역사관 또한 부족한 자료가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한편 고려대장경 판각성지 등 세계사적 문화자산에 대한 국내외 학자들의 방문이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진작 문화자산의 소유주인 남해군의 움직임은 미약해 '주객이 바뀐 느낌'을 주었다.



<관광·축제>
9.송정·문화예술촌 개발 사업 착수

송정국립관광단지와 남해스포츠파크, 전통문화예술촌사업 등 대규모 관광개발 사업이 가속화된 한 해였다. 송정단지는 콘도시설이 들어서 공사 중이며 스포츠파크도 축구장과 대한야구캠프 조성돼 손님을 받기 시작했다. 전통문화예술촌에는 독일교포정착촌이 함께 들어설 계획이며 이미 110여명의 교포들이 투자의향을 밝혔다.
한편, 군민들을 설레게 했던 (가칭)한려대교는 정부의 예산확보 어려움으로 불확실해졌다. 또한 해맞이·전복·단풍·해맞이축제 등 지역소규모 축제가 끊이질 않는 한해였다.



<정보>
10. 뒤늦게 찾아 온 정보화 물결

지난해 군 홈페이지 개통과 더불어 지역에서도 인터넷 바람이 뒤늦게 불기 시작했다. 인터넷 전문 뉴스공급업체와 관공서와 교육기관에서도 기반시설을 확보했다. 또한 일반 군민들도 초고속 통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반면 여전히 면 지역이나 저소득층은 '정보의 바다'에서 소외되었다. 또 인터넷의 부작용 또한 적지 않았다. 건전한 정보 공유나 여론 형성의 장으로 사용돼야 할 공공기관의 게시판에 욕설과 비난의 글이 난무했다. 급기야 고소고발 사건도 발생했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