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속의 섬을 찾아서 ②상주면 노도
섬 속의 섬을 찾아서 ②상주면 노도
  • 하길동
  • 승인 2004.02.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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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고 그립다만 사람만큼 그리울까”
 
  
벽련에서 바라 본 노도 전경. 
  

















 

상주면 벽련리 5반 노섬(노도). 벽작개 선착장에서 노섬을 바라보지만 파도가 앞을 막는다. 낯선 이의 방문이 그다지 달갑지 않은 듯 벽작개와 노섬 사이의 파도는 조금씩 수위를 높인다. 그래도 가야한다. 노모를 그리워하며 흘린 서포의 눈물로 피웠을 노섬의 동백꽃과 뭍에 대한 그리움 안고 살아갈 섬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전체주민 22명. 그 중 10여명이 독거노인이기에 그들은
외로움을 이겨내는 법을 배워야 했다.
  

외로움을 이겨내는 법
'묵묵부답'

마을의 책임자인 김정선(56) 반장이 험한 파도도 마다하지 않고 벽련으로 마중을 나왔다.

청하지도 않았건만 굳이 섬을 찾겠다고 들른 이들을 반갑게 맞으러 그의 선심 때문인지 섬으로 향하는 뱃길의 파도 따위는 작은 귀찮음으로 치부해 버렸다.

노섬의 겨울은 묵묵부답이다. 쉼없는 파도의 부딪힘과 갈매기의 외침에도 노섬 사람 누구도 대꾸하지 않는다. 선착장에 도착하자마자 그물 손질을 하는 주민을 만났지만 노인 또한 낯선 이를 잠시 살펴보는가 싶더니 자신의 일에 몰두한다.

꽃나이 스무살에 섬인지도 모르고 읍에서 시집을 왔다는 박경업(68) 할머니. 막상 와보니 배를 타야한다는 소리에 '가마를 돌릴 수도 없고 이게 내 팔잔가 보다'하며 살아온 것이 50년. 이제 자식들 모두 장성해 타지로 보내고 6년전 남편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홀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혼자 산 6년의 시간동안 노인은 외로움을 삭히며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을 터.  

박경업 할머니처럼 자식들 외지로 떠나고 남편마저 세상을 떠나 홀로 살고 있는 노인들이 10여명에 달한다고 했다. 한 때 300여명이 살았다는 노도. 하지만 현재 15가구 22명의 주민만이 살고 있고 가장 젊은 주민이 올해 55세라고하니 노(櫓)섬이 노(老)섬으로 되어가고 있는 듯해 씁쓸했다.

마을 너른 터로 발길을 돌리니 동네 아낙 너댓명이 모여 그물 손질을 하고 있다. 온종일 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니 그 흔한 새참거리로 과자 부스러기 하나 있을 줄 알았건만 그들은 그저 오늘 할일을 꼭 마무리할양 일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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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리 할 이야기가 있겠는가. 뭔가 싸움도 있고 행복해 웃을 일도 있어야 나눌 얘기도 있을 터. 간혹 오가는 도외지 자식들 얘기가 그들의 새로운 뉴스거리의 전부.    

 
  
워낙 주민들이 적기에 노도는 네댓사람만 모여도 마
을잔치다.
 
  

사람 모인 그곳이 잔칫집

'노도상점'이라는 곳을 찾았다. 마을을 한참 올라 겨우 구판장을 찾으니 어디 가게라고 할 처지가 못 됐다.

가정집의 보일러실에 라면이며 음료수, 술 등 서너가지 생필품을 구비해 놓은게 전부. 십여년 넘게 구판장을 하고 있다.

구판장을 운영하는 구영자(61)씨는 낚시철이나 명절 때 외지에서 사람들이 들어오면 간혹 음료수나 라면을 찾는 이들이 있어 일부 물건을 몇 가지 갖다 놓을 뿐이지 장사를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웃 김대식(71) 할아버지 집에서 시끌벅쩍한 목소리들이 들렸다. 노도에서 처음 듣는 대화 소리다. 작은 마당으로 들어가니 소박한 술자리가 열리고 있었다. 모인 이들이라고 해봐야 이집 저집 다해 다섯명 남짓.

요즘 회사 일로 몸이 부실해진 막내아들에게 보낼 염소를 잡은 후 남은 것을 가지고 작은 잔치(?)를 마련했다. 더 모을래야 모일 주민도 없었다. 때문에 대여섯명만 모여 술이라도 한잔 걸치면 곧 마을 잔치가 된다. 

 
  
노섬 사람들에겐 벽련은 큰집 동네요 뭍의 시작이며
새로운 삶의 출발지였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떠났을까. 그리고 또 누가 떠나고 싶어할까.
  

도선 연결 간절히 원해

섬사람들의 입에선 어김없이 '물' 이야기가 나온다. 노섬 사람들도 평생을 물에 목말라했다.

지금이야 주민들도 많이 줄고 펌프를 이용해 그다지 물 걱정이 없다지만 한 때는 섬 동쪽 작은 샘의 물을 깃기 위해 밤잠을 설쳐야 했다며 회상한다.

노섬에도 지역내 다른 유인도처럼 해수담수화시설이 있다. 하지만 지난해 고장이 났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현재까지 수리를 못하고 있어 애를 먹고 있다.

노섬 사람들의 가장 큰 희망은 주민들이 많이 줄었다하더라도 상시적으로 섬과 뭍을 연결해주는 도선이 생기는 것이다.

작은 일을 보려해도 뭍으로 나가야하는 섬이기에 몸이 아파도 자신의 집에 배가 없으면 이웃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 그래서 주민들은 상시적으로 오가는 도선이 생기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이제 노섬에서 동백꽃을 보기란 쉽지가 않다. 붉은 자태를 뽐내며 기다리고 있으리라던 작은 기대가 무너졌다. 자신들의 욕심을 위해 훔쳐간 뭍사람들로 인한 결과라는 얘기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마을 중심지에는 지난 97년 폐교된 노도분교가 아직 자리하고 있었다. 한 때는 80여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다니며 시끌벅적했을 터이지만 이젠 무성한 풀들과 주인 잃은 미끄럼틀만이 낡은 교정 주변을 지키고 있다.

노도분교를 군이나 문화단체에서 매입해 서포 선생의 유배생활을 조명할 수 있는 전시관 등으로 이용했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어한기 노도 주민들은 어업 준비로 시간을 보낸다. 남
자들은 선박 수리, 여자들은 그물 손질이 대부분이다.
 
  

'헛된 꿈일지라도…'

노섬 사람들에겐 벽련은 큰집 동네요 뭍의 시작이며 새로운 삶의 출발지였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떠났을까. 그래서 명절이면 주민들은 마을 어귀에서 벽련으로 들어오는 차들을 보며 자식들을 기다리고 한다. 

미국으로 이민을 간 딸이 올해는 꼭 찾아올 것만 같다는 정덕아(78) 할머니. 오년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돈벌러 부산으로 간 뒤 소식이 끊긴 막내 딸 현정이 걱정에 밤마다 눈물로 지샌다는 허영자(62)씨. 줄곧 부산에서 생활해 오다 몸을 다쳐 10여년 전에 고향으로 들어와 지난해까지 반장일을 해온 이석진(59)씨.

이들은 오늘도 벽련 선착장에서 행여나 자식들이 두손 흔들며 노섬으로 올까하며 고개를 내민다. 그것이 매일 그들을 실망케 하는 헛된 꿈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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