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행 5명은 마을을 대표하여 16일 오후 승합차를 운전하여 부산국제여개선 터미널에 오후 5시에 도착하자 부산해양대 김정하 교수 외 해양대 4명의 교수 일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터미널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일본 후쿠오카항행 카멜리아호에 오후 6시에 승선하였다.

여객선 안에는 목욕탕·노래방·레스토랑식당·오락실·면세점·편의점 등 없는 것이 없었다.
여객선 호실에서 짐을 풀고 우리가 준비한 술과 음료·다과를 먹으며 우리마을과 해양대등 많은 이야기 꺼리로 담화를 나누면서 친분을 쌓았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밤 11시에 출항시간이 되자 우리 일행은 선실 밖으로 나가 부산항을 출항하여 오륙도를 지나자 높은 파도에 우람한 여객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몇 명의 일행은 멀미를 했다.
다음날 아침 6시에 눈을 떠보니 여객선은 이미 일본 후꾸오카항에 정박해 있었다.

목욕탕에서 샤워를 하고 여객선 식당에서 조식을 하고 짐을 챙겨서 하선 하였다.
입국절차를 받고 나가니 일본 키타큐슈 시립대 히로시히 슈도 교수와 키타큐슈시에서 가이드 통역관을 지원한 한국 인천대 동복아 통상학과 유학생 서보현(20) 여학생 그리고 슈도 교수의 제자 5명의 일본 학생이 우리를 맞이하였다.

우리 17명의 일행은 키타큐슈시에서 지원한 25인승 버스를 타고 선진지 견학의 처음 일정인 일본 큐슈지역 오이타현의 중앙부에 위치한 인구 약 13,000명 아름다운마을 유후인 마을에 도착했다.
유후인 마을 주위로 유후로다케산를 비롯한 1,000m이상 되는 산으로 둘러싸고 있는 분지 중앙에 위치하고 있었다.

유후인은 유후인·유노히라·쓰카하라 등 3개의 온천지로 형성되어 피부병·위장병 치로 효력이 좋아 많은 온천객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유후인 농촌 인구가 줄어들다 2005년부터 인구가 조금씩 증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유후인 마을은 세계2차대전 이후부터 장기간 허탈감과 어려운 시기에 시와 의회에서 유후인을 살리기 위하
여 인공호수 댐을 건설하여 관광산업을 계획했으나 찬반 양론대립이 심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유후인 청년단 회장을 비롯한 단원들이 인공호수 댐이 건설되면 유후인마을 절반이 사라져 버리기에 적극적으로 반대했으며 유후인마을 만들기 사업 대안으로 새로운 것이 있는 농림업·온천·자연의 산야 3가지 자원을 통합하여 역동적으로 기능하는 주변 마을가는 차별화된 주민 자발적인 마을 가꾸기를 시작한 것이 지금의 유후인 마을이라고 합니다.

유후인 마을은 젊은층에서 ‘내일(미래)을 생각하는 모임’이 만들어지고 유럽 등 여러 각국 선진지 견학을 통하여 똑같이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유후인 마을의 전통문화와 자연환경 자원과 접목시켜서 생활환경거리가 정비되고 주민의 생활이 보다 충실해지고 안정적이게 만들어져 이 바탕위에 유후인 만의 독특한 관광지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본 유후인은 깨끗하고 건축물(농가·상가)등이 자연과 조화를 잘 이루고 건축물 지붕은 우리나라처럼 각양각색의 모양이나 색이 아닌 일정한 경사 지붕에 통일감을 주는 색으로 편안함과 아늑함을 느낄 수 있었으며 주변 공간은 잘 정비된 조경수와 자연돌 그리고 물이 흐르는 천이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유후인 전통식당에서 일본 수제비된장국과 쌀밥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본고이따가마을 1950년대 고전문화거리를 잠시 둘러보고 우리가 하루 농박(민박)할 아지무 마을에 도착했다.

그린투어리즘회 미야다(59세.여)회장과 일행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100년 된 그린투어리즘회 미야다회장 농가에서 우리일행과 그린투어리즘회 회원 5명가 함께 간단한 소개와 간담회, 우리가 준비한 남해 특산물(유자청·마늘엑기스·마늘막걸리) 선물 전달식도 가졌다.

통역관을 통하여 아지무 마을가 그린투어리즘회 대하여 많은 질문을 하고 답을 들었다.
아지무 마을은 오오이다현의 북부에 위한 인구 8천명의 쌀과 포도단지가 유명하고 했다.
일본의 유명한 작가 시바 요타로는 아지무 마을을 평안하고 경치 좋기로 일본 제일이라고 평가 했다고 한다.
이런 곳에서 꾸민 것이 아닌 글자 그대로 있는 그대로의 순박한 농촌의 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위해서 미야다세이이치(59.여)회장은 고령화가 진행되고 농산물 수입 개방 등으로 땅에서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업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절박한 상황을 인식하고 농가에는 의식개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설득 했으며 농업, 농촌, 시골이니까 가능한 것을 찾아보자는 생각을 갖고 92년 농가 8명이 모여 그린투어리즘 연구회를 조직하고 연구모임을 가졌다고 한다.

그 후 농업과 농가만의 문제가 아닌 아지무 전체로서 지역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직업이나 연령, 성별을 초월한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96년 3월에 30여명이 모여 아지무 그린투어리즘 연구회를 발족했다고 했다    

현재는 65농가 25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농박(민박)은 언제나 관광객을 받을 수 있는 농가는 14호이고 성수기 때 관광객을 받을 수 있도록 51농가가 협력 체제를 갖추고 있다고 했다.

관광객 수용은 회원제이고 농가가 멤버카드를 발행하고 회원등록을 하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매년 농박 체험자가 증가하고 있으며 99년에는 100명 정도 이었으나 05년에는 5000명, 09년 1만 여명까지 증가 했다고 한다.

그중 10%는 한국인이 점유하고 아지무 읍내에서는 한국어 강좌도 열리고 있다고 한다.
우리마을 일행은 별도로 ‘별이 내리는 집’ 농박(민박) 농가에서 1박·2식을 하였다.

농가 앞에는 우뚝 솟은 산봉우리, 주위에는 다랭이논, 한적한 시골에 위치한 전통 일본 농가 주택 이였다.
별이 내리는 집 농박은 70대 노부부로 아들 내외와 함께 살고 있었다.

아들 내외는 30대로 인근 읍내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며느리를 보게 된 경우가 흥미로운 일이 이었다.
며느리가 이집과 인연을 맺은 것은 이집으로 우연히 친구들과 같이 아지무의 이곳  별이 내리는 집에 숙박하다 농촌의 전원풍경과 주인 내외의 친절함에 이끌려 몇 번에 걸쳐 이집에 와서 숙박을 하게 되면서 주인 아들과 애정이 싹트기 시작 하면서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음식으로 내어주는 것은 대부분이 자기 땅에서 손수 지은 것들이 재료라고 했다.
이렇게 자기가 직접 지은 야채와 농산물을 사용했기에 안심하고 이곳을 찾아오는 손님에게 자신 있게 권할 수 있게 된다고 하였다.

우리에게 저녁밥상으로는 하얀 쌀밥에 야채 수제비 된장국에 여러 찬과 유부초밥을 내어 주었다.
푸짐한 음식에는 주인아주머니의 정성이 가득해 보였다.

우리가 잠자리한 방은 다다미방에 이부자리가 1인당 6개 주었고 직접 이부자리를 주인아저씨가 정성껏 갈아주었으며 유담프(따뜻한 물을 넣은 통)를 이부자리 발밑에 넣어주었다.

일본 특유의 검소함과 절약정신이 주인아주머니·할아버지에게 몸에 배여이었다.
주인아주머니·할아버지는 농박을 운영하면서 도시의 손님과 외국인, 아이들이 찾아왔을때 그 사람을 위해 내가 가꾼 채소로 정성들여 음식을 준비하고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같이 먹는 것, 그것이 그린투어리즘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돈을 목적으로 그린투어리즘을 하기 보다는 도시와의 교류를 통하여 행복을 느낄 수 있기에 만족 한다고 하셨다.

행복해 하시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5명의 1박·2식 농박 비용은 30,000엔, 원으로는 495,000원 이였다.
농박 농가에서 조식을 먹고 다시 다른 일행과 함께 미야다회장 농가에 모여 녹차 한잔을 마시며 담화를 나누고 남해 문항어촌체험마을 홍보도 하였다.

그린투어리즘 회원 분들이 우리 마을에 흥미와 호기심을 가지자 일본 교수와 학생, 그리고 그리투어리즘 회원을 초대하고 방문 약속을 받았다.

아지무 그린투어리즘 회원 분들과 아쉬운 이별을 하고 우리의 일행 히로시히 슈도 교수가 다니는 키타큐슈 시립대에 방문하여 뷔페식 점심을 먹고 캠퍼스를 둘러보고 키타큐슈시 에코타운에 방문 하였다.

근대 1901년 야하타제철소 공장이 있는 키타큐슈시는 일본 4대 공업지대의 하나로서 일본 고도성장을 이끌어 오다 1960년대 죽음의 도시라고 불릴 정도의 산업공해가 심각했다고 한다.

키타큐슈시는 하늘을 다시 볼 수 있고, 생물·어패류가 살 수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환경보전정책과 산업진흥정책을 통합한 독자적인 지역정책으로서 1997년 7월에 에코타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하였다.

목적은 환경산업 육성과 쓰레기 폐기물 억제, 산업자원 재활용하기와 배경으로는 매립지 보호보전과 천연자원 고갈 대비, 이산화탄소 억제를 하기위하여 에코타운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사업은 근접해 있는 키타큐슈 학술연구도시와의 연계를 통해 환경분야의 교육·기초연구·기술·실증연구·사업화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먼저 에코타운센터 홍보관에 들어가 에코타운 사업을 영상물과 교육선생으로부터 설명을 들었다.

이어서 에코타운 산업 현장을 견학 하였다.
먼저 버려진 전자 가전제품을 수거하여 들어온 가전제품을 분해하고 분해된 부품을 재생 리사이클 공장으로 보내기 위한 포장하고 있는 공장을 견학 하였다.

다음은 폐차된 자동차를 분해하고 리사이클 공장으로 가기까지의 과정을 설명 듣고 현장 견학도 하였다.
일본은 키타큐슈시 에코타운을 시발점으로 일본내 26개의 에코사업장이 있다고 한다.

일본은 작은 것에도 소중히 하고 자연·환경·자원을 먼저 생각 하고 멀리 미래를 생각하는 일본이 대단해 보였다.

일본 선진지 견학 일정을 마무리 하고 일본 시모노세키항 터미널에 도착하여 부산해양대교수와 일본 일행과 아쉬운 이별을 하고 부산항 부관 페리호에 승선 하였다.

우리 마을 일행은 많이 힘들어 했지만 많은 것을 느끼고 마을을 생각하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마을 이끌어 가야 할지를 깨우쳤다.

이번 선진지 견학을 통하여 아지무 그린투어리즘회 와 키타큐슈시, 키타큐슈시립대 와의 인연으로 일본 외국인 관광객, 체험객을 문항어촌체험마을로 유입시켜서 앞으로 국제적인 체험마을로 나아갈 수 있는 첫걸음 이였다.

더 소중한 것은 견학 하는 동안 마을에서는 나누지 못했든 마을 리더 자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진솔하고 건설적인 대화가 더욱더 소중하고 발전적 이였다.

일본 선진지 견학에 협조 해 주신 문항마을회와 부산해양대 김정하교수외 4분 그리고 히로시히 슈도교수 일행, 키타큐슈시, 아지무 그린투어리즘회 분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협조 해 주신 모든 분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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