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했던 과거의 섬, 조도
화려했던 과거의 섬, 조도
  • 하길동
  • 승인 2004.02.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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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날개짓을 꿈꾸다
 
/사진 하길동 기자
 
미조항에서 뱃길로 길어야 5분 거리에 자리한 조도.
앉은 새의 형상을 닮았다 하여 이름 붙인 새의 섬 조도를 찾아 어한기 주민들의 삶을 들여다 봤다.



 
  
사진은 그리움을 감추게 하는 유일한 도구이다. 외지
로 나간 자식들과 손주들의 사진은 조도 마을 주민들
의 가보이기도 했다.
 
  

빛바랜 사진의 추억

미조항에서 도선을 타고 대도를 들린 다음 도착한 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선착장으로 사용되는 매립지였다.

잦은 태풍에 주민들이 불편을 겪자 조도와 대도를 연결하기 위해 섬 사이를 아예 매립해버렸다고 한다.

이제 매립지는 두 섬을 연결해주는 도로이자 아이들의 놀이터, 어른들의 작업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어한기에다 추운 날씨 탓인지 매립지 어디에도 마을 사람들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회관을 찾았다. 지은지 30여년이 다되어 간다는 마을회관의 낡은 집기와 그 보다 더 빛바랜 갖은 사진이며 상패는 일제시대 막대한 수산수입으로 '까네시마(돈섬)'이라고 까지 불렸다는 섬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하지만 과거를 그대로 안고 있기엔 회관의 몰골이 너무나 초라했다. 군데군데 떨어져나간 시멘트들이며 페인트가 떨어져 흉측해진 벽면, 낡은 사무집기 등은 하루빨리 내버려야할 과거였다.

이춘생 이장은 "오래전부터 마을회관 신축을 요구하고 있지만 섬마을이라 그런지 쉽지가 않다"며 "노인들이 쉴만한 경로당이나 복지회관 하나 없어 아쉬운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나마 비치하고 있는 컴퓨터며 팩스기 등 사무집기조차도 고장나 불편을 겪지만 교체 비용이 한두푼이 아니라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어한기 섬마을은 그 어느때보다 고요하다.
바람이 매서운 겨울 외지인을 맞는 것은 빨
래줄에 걸리 생선 뿐이었다.
  

물, 비행접시… 그리고 낚시객

조도마을에서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은 물이다.

섬마을 어딜 가나 물은 귀하다지만 몇 해 전까지도 조도 주민들의 물 부족은 심각했었다고 한다.

그러다 지난 1999년 정부의 지원으로 해수담수화 시설을 건립한 이후 물 사정이 예전보다 나아졌지만 그래도 조도마을 주민들은 콸콸 넘치는 물에 샤워 한번 맘껏 해보는 것이 소원이란다.

그래서인지 집집마다 커다란 물탱크가 한두개씩은 빠짐없이 들어서 있다. 

매립지에서 마을을 둘러보며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로 '비행접시'. 비행접시의 정체는 위성방송을 수신하기 위한 수신기인데 한 집에 하나씩 담벼락이며 지붕 위에 앉아 있다.

아직 유선 시설이 들어오지 않은 섬이기에 임시로 안테나를 설치해 텔레비전을 시청해 왔는데 지난해 태풍으로 안테나가 완전 파손되면서 한참을 불편을 겪어오다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위성방송수신기를 설치했다고 한다.

조도마을에는 구판장이 없다. 몇 년 전만해도 구판장을 운영했는데 주민들이 계속 줄면서 수익이 없어 문을 닫아 버렸다.

그래서 주민들은 담배며, 술, 라면 등 작은 생필품 하나라도 구입하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미조로 나가야 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러한 불편보다 더 큰 근심은 낚시객들의 무분별한 쓰레기 투기로 인한 바다 오염이라고 한다. 곳곳의 갯바위를 찾는 낚시객들이 버린 쓰레기로 몸살을 앓을 정도.

"자신들이 좋아 즐기는 낚시를 위해 찾는 바다를 함부로 여기는 사람들이라면 바다를 찾을 자격조차도 없다"는 한 주민의 말에는 분노마저 느껴졌다. 

 

 
  

모두가 떠난 섬마을. 그래서인지 섬마을 주민
들의 그리움은 다르다. 막내아들의 결혼을 걱
정하면서도 마을자랑에 여념이 없던 노인회장
부부.
  

 
  

조도를 지키는 사람들의 꿈

매립지 가장자리에 자리잡은 작은 움막에는 마을 아낙들이 낙주(낙지 낚시)를 정리하느라 손이 쉴 새가 없었다.

하루 온 종일 좁은 움막에 앉아 손을 놀려도 1만5000원 정도라고 하니 가욋일치고는 그리 높은 벌이는 아니지만 별달리 할 것 없는 어한기에 할 수 있는 유일한 일거리라고 한다.

"육지처럼 공장이나 식당이 있어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한기 이런 일이라도 해야지 반찬값이 나오지"라며 허한 웃음을 내보이는 아낙들.  

일제시대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열여섯 나이에 미조에서 시집와 평생을 밭일이며 바다 일을 하며 살아 왔다는 마을 최고령 주민 박정례(81) 할머니.

늦은 나이에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막내아들이 걱정이라면서도 "도둑 한번 들지 않은 모두가 한 가족같은 곳이 조도"라며 마을 자랑을 아끼지 않는 노인회 정태홍(73) 회장과 부인 장신자(67)씨.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어리다는 서동미(5).

자신들이 태어나고 자신들의 삶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조도. 그 속에서 작은 희망들을 불 밝히며 살아가는 조도마을 주민들은 언젠가 화려했던 조도의 날개짓이 다시 시작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인터뷰>조도마을 이춘생 이장
“하루빨리 젊은 사람이 맡아주길”

 

 
  
조도마을 이춘생 이장. 
  
조도마을 이춘생(69) 이장. 그가 이장 일을 맡은지도 어언 10여년을 넘기고 있다. 기간으로만 따져보면 장기집권이다.

하지만 장기집권이 마냥 좋을 수만은 없다. 예전에야 돈 많은 섬이다 보니 섬마을 이장이라도 괄시를 못했지만 지금은 젊은 사람들은 벌어먹을게 없다며 전부 뭍으로 나가고 노인들만 남다보니 마을에 작은 일 하나 추진하려해도 쉽지가 않은 실정.

"마누라 보기가 미안할 뿐이다. 남들은 부부가 바다에 나가 어떻게든 한 푼 더 벌이겠다고 하는데 이장 일 맡고부터 돈 버는 일은 거의 손을 놓을 수밖에 없다"며 섬마을 이장의 고충을 털어 놨다.


그래도 예전에 이장 맡은 것이 자랑스러웠었다고 한다. "면 체육대회니 뭐니 행사에 나가기만 하면 우리 마을이 항상 1·2 등을 다퉜는데. 협동도 잘하고 마을에 뭔 일 생기면 주민들이 전부 자기집 일처럼 나서주고…"라며 빛바랜 기억들을 더듬었다.

이춘생 이장의 소원은 하루빨리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흔쾌히 이장직을 물려주는 것. 올해는 부디 그 소원이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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