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광 석 편집인                        
  
2000년 4월 13일은 16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던 날이다. 2002년 12월 19일은 16대 대통령선거가 있었던 날이다. 2004년 3월 12일은 야당 국회의원들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킨 날이다. 그리고 17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4월 15일이 다가오고 있다.

3월 12일 국회를 비춘 텔레비전을 통해 우리가 보았던 것은 무엇인가! 다수야당의 횡포였던가. 아니다. 종말을 앞둔 수구세력들의 '이대로 죽을 순 없다'는 정권찬탈 '쿠데타'였다.

61년 5월 16일 박정희 쿠데타와 79년 12월 12일 전두환 쿠데타의 수단은 군홧발과 탱크와 총이었지만 2004년 3월 12일의 쿠데타의 수단은 '의석수'였다는 것만 다를 뿐 정권을 찬탈하고야 말겠다는 야욕은 한 치도 다를 게 없었다. '쿠데타'라는 말에 '군사'를 떼고 '의회'라는 말만 붙이면 되는 '쿠데타'였다.

3월 12일 우리는 무엇을 보았는가! 우리가 본 것은 무엇인가? 87년 6월 국민항쟁으로 쓰러뜨린 전두환 노태우 일당이 80년 5월 18일 전야로 되돌아가 국민들에게 총질을 해대는 모습이었다. 고등학생들에게. 중학생들에게, 초등학생들에게 우리는 오늘의 이 역사를 어떻게 말해줄 것인가?

헌정 54년만인 2002년 12월 19일 처음으로 우리 국민들은 서민형 대통령을 선택했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엄숙한 모습의 대통령이 아니라 서민들 가까이 다가와 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아픔을 어루만져줄 수도 있을 것 같은 대통령을 선택했다. 그리고 겨우 1년 서민형 대통령의 리더십을 경험했을 뿐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를 포함한 기성 정치권이 정치자금을 어떻게 조달하고, 독점재벌기업들은 어떻게 족벌체제를 유지해 가는지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그 적나라한 실체들을 볼 수 있었다. '차떼기'로 정치자금을 건네주고 그가 정권을 잡으면 집권기간 내내 온갖 특혜로 돌려 받으려고 한 정권과 족벌기업의 벌거벗은 거래관계를 볼 수 있었다.

서민형 대통령을 선택한 국민들의 선택은 그들이 결코 드러내지 않았던 그들의 치부를 낱낱이 드러내게 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2004년 4월 15일 이후 더 이상 그런 기득권을 지켜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이 살아남을 마지막 방법은 쿠데타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최악의 길을 선택했다. 그들은 2000년 4월 13일의 눈으로 2004년 4월 15일을 맞이하려고 한 무모한 선택을 했다.

아무도 거스를 수 없는 도도한 역사의 발전이 2002년 2월 19일을 거쳐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현실을 그들은 제대로 읽지 못하고 거기에 헤딩을 함으로써 스스로 더 빨리 더 확실하게 죽는 선택을 했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마음대로 끌어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 그들 눈에는 국민이 보이지 않았다. 국민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 수구세력의 원초적인 한계이긴 하지만 이번 쿠데타는 너무나 무모한 쿠데타여서 그 주동자들은 4월 15일 국민의 응징을 받는 일만 남겨놓고 있다.

백 번 양보하여 만약 이번 쿠데타로 대통령이 물러난다고 해도 수구세력이 재집권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헛된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국민들은 이미 2002년 12월 19일 그런 반역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을 강을 건너왔고 그 날 함께 역사의 강을 건너지 못한 사람들의 목숨은 4월 15일까지만 허락돼 있기 때문이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한 와이에스의 오래된 외침도 당시에는 새것이었고 진리였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깝다.

의회쿠데타를 부추긴 조선·동아·중앙 수구족벌언론의 반발이 아무리 거세더라도 역사의 도도한 발전을 가로막을 수는 없다. 권력은 민중에서 나온다는 진리는 역사에서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고 역사가 후퇴한 적은 한번도 없기 때문이다.

끝으로 한 가지 덧붙이자면 국가권력의 서민화를 앞당기려면 이 시대엔 지방권력의 서민화부터 앞당겨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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