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한 200명, 매년 1월 그리고 500만원, 3권.....그가 이런 수치를 말했다.

가락남해군종친회 김종도 회장(73)은 등단 작가, 전 향토문화연구소 소장 등 10여개가 넘는 직함을 가졌다.
7년은 그가 남해에서 또는 남해와 연관 있거나 그의 제자들의 결혼 주례를 서면서 보낸 세월이 그렇다. 내리 7년, 김 회장은 주례 사례비 5만원, 8만원, 10만원 중 일부를 따로 모아 매년 1월 100만원 씩 7년간을 남해 향토장학금으로 써달라며 쾌척해 왔다.

“돈이 많아 뭉텅뭉텅 내놔야 자랑인데....”
김 회장은 남해농고를 졸업했다. 자격시험을 거쳐 20세에 교사로 교단에 선 뒤 창원 등지에서 교장을 거쳤다.

“집이 못살아, 중학교와 고등학교 6년 간을 점심을 못먹었다”고 한 그다.
500만원은 99년 남해 다초초등학교로 부임, 당시 ‘남해에도 결식아동들이 많다’는 이야길 듣고 선뜻 기부한 금액이다. 어린 시절 6년을 배고파했던 그의 얘기가 절절했다.

“다행히 1등으로 입학해 3년간 학비 면제는 받았지. 동생들은 고용살이를 가야했거든, 얼마나 미안한지 몰라.”
일흔이 넘은 그의 가슴에 아직도 남은 흉터는 ‘미안함’이었다. 4남2녀의 장남인 그다. “일요일이면 나무짐을 팔기 위해 7km되는 거리를 지고 다녔고, 계란을 수집해서 팔기도.....”

200명은 그가 8년째 남해와 서울 등지로 돌며 남해와 연관이 있거나 제자들의 요청에 의해 주례를 선 숫자다. 200은 기부자의 숫자이고 100만원을 매년 만들어내는 숫자다.

“200쌍 중 아직 한 쌍도 이혼을 하지 않았다”고 잘라 말한 그다. 그 자신도 부부싸움 할 일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부부간의 취미 생활, 간섭 않기” 등을 말했다. 2남3녀의 자녀를 둔 그는 “자기들 인생과 내 인생은 따로”라고 말했고 동갑 아내 공삼순 씨는 요즘 한창 ‘가야금 배우기’에 몰두해 있다며 웃고 만다.

“평범하게 퇴직했고 욕심없이 마음을 비우고 편히 산다”고 말한 그의 말에 새삼 ‘내공’을 느낌이다.
주례를 짧게 한다는 김 회장이다. “길게 한다고 잘사는 건 아니거든”하고 말한 그의 웃음이 좋다. “요즘 남해에 베트남과 중국, 필리핀 등지에서 시집오는 사람들을 위해 인사말은 꼭 신부나라말로 한다”는 그다.

올해도 벌써 남해출신 2쌍의 주례를 섰다. 남해읍 하얀집웨딩홀에서 고정으로 주례를 맡고 있다.
3권은 그가 낸 책의 수다. 머물다 간 흔적·잎새 없는 나뭇가지, 남해사투리사전 등이 그거다. 그는 수필가이도 했다.

기부에 대해 “무조건 죠삔다(주어 버린다)”고 한 사투리가 팍팍 와닿는다. 이런 말 속에 그의 소탈함이 느껴진다.

남해시장 한 식당 구석에 마주 앉기까지 박박 우겨대고 겨우겨우 설득해 김 회장을 만났음을 밝혀둔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