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마셍”
 실례합니다. 저는 10월 29일부터 11월 4일까지 다녀온 일본에서의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6박 7일의 일정을 여기다 모두 상세히 담아내기는 힘들겠지만 인상에 깊이 남았던 내용들을 중심으로 담아보겠습니다.
 처음으로 TV가 아닌 제 두 눈으로 바라 본 일본은 그저 한국과 똑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단지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이 일본어 밖에 없었죠. 그것 말고는 비슷해서 오히려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도로도 우리나라랑 똑같은 도로 같이 보이는데 오른쪽, 왼쪽 반대로 차들이 달리고 있고, 버스도 똑같은 버슨데 타는 곳이 반대였습니다. 일본이었습니다. 제가 일본에 온 게 확실했습니다. 그제야 실감을 하게 되었죠.
 저는 평소에 일본에 대해서 좋은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았습니다. 툭하면 ‘독도’문제로 붉어지는 언론, 수업시간에 배우는 일제강점기 때의 문학들. ‘일본은 그저 우리에게 적이다.’라는 생각이 먼저 머릿속에 박혔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친구들이 관심을 가지는 일본 가수들이나 배우들에게도 신경을 써지지 않고, 일본어 수업시간에도 크게 집중하지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기회가 저의 생각에 많은 변화를 주었고, 일본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저는 일본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도 없으면서, 그저 들리는 말로만 일본을 단정지어버리고 인식하게 되어버린 것이었지요. 일본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이번 연수는 영광스럽고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외무성에 방문할 수 있는 일, 학교방문, 호텔마저도 이렇게 부족하고 모자란 제가 누리기엔 너무나 호화스러운 혜택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조금 더 관찰하고, 조금 더 발견하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일본에 갔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유독 속상한 일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일본의 문화를 배우는 일, 관찰하는 일 다 좋지만 그들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 눈으로 직접 보면서 느끼는 것이 더 뜻 깊은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일본을 바라보기는 했지만 자꾸만 들려오는 일본어에 저는 작아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본어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인사뿐이라 인사 이후엔 그저 침묵을 지키는 것이 제 일이었죠. ‘환영중식회’를 할 때 테이블마다 함께 움직여주신 통역사분들과 함께 식사를 했는데 말씀을 하실 때마다 언제 고개를 끄덕이고 웃어야 할지 몰라서 멍하니 앉아있었고, 속에 할 말이 많아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가 없으니 답답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조금 더 알아 볼 수 있는 일본의 문화를 놓쳤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 속상했죠. 한 나라를 알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언어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일본어에 관심이 가져지는 계기가 마련되기도 했습니다.
 모든 활동들이 기억에 남고 생각이 나지만 방재교육체험을 할 수 있었던 시설이 있었던 것이 떠오릅니다. 일본은 자연재해 중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나라이고, 그에 따른 예방이 철저하고 준비를 많이 한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했었습니다. 정말 중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 예고 없이 닥치는 자연재해에서 당황하지 않도록 그런 시설에서 자신이 직접 체험을 한번 해봄으로써 다음번에는 침착하게 대처 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진다고 느꼈습니다. 특히나 지진을 직접 느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지진이 일어나는 상황의 화면이 실감나게 보였습니다. 비록 진도를 알고 체험을 하다 보니 그저 여유롭게 흔들림을 느꼈지만 진짜 지진이 일어난다면 겁에 질리고 무서울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지진에 하루하루가 두려울 것 같기도 합니다.
 다음으론 유익했던 홈스테이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화목하고, 참 따뜻한 가정이었습니다. 친절하게 대해주실 뿐만 아니라 덕분에 직접 일본 가정을 체험해보는 기회를 가져서 기뻤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관심이 많았고 가르쳐 드릴 수도 있어서 좋았습니다. 혹여나 실수를 하게 될까봐 몇 번을 돌아보게 되기도 했죠. 목욕할 때 실수를 하게 될까봐 하나와 30분가량을 이야기하다가 결국엔 머리만 감게 되는 일도 있었고, 밥 먹을 때도 눈치를 봐가면서 먹게 되었습니다. 아침인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 음식을 먹을 때도 “오이시이~(맛있다)”는 반드시 했습니다. 아키타에서 유명한 음식을 먹어 볼 수 있었고 차를 마시는 법도 가르쳐주셨습니다. 저는 저와 또래인 하나 양과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서로의 의견을 나누었고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대화도 오고 갔습니다.
 저녁을 먹을 때 고구마튀김이 있었고, 저를 배려하시는 마음으로 김치도 준비해주셨습니다. 반짝 떠오른 생각에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마와 김치를 함께 먹는다고 가르쳐 드리니 하나도, 아빠도, 엄마, 심지어는 동생까지도 한 번씩 먹어보시며 “오이시이”라고 해주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우리나라를 알리는 것이 신이 나던지 그 뒤부터 생각나는 것은 하나씩 하나에게 설명해주고 일본과 비교하며 이야기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 앨범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유독 사진을 많이 찍으셔서 신기하게 생각했는데, 그 동안 찍은 사진들을 모두 인화하여 앨범으로 엮어서 주신 것이었습니다.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정이 많이 들었던지 자꾸만 눈물이 흘렀습니다. 호텔에 도착한 뒤 헤어지려던 순간에 외웠던 인사들을 하려고 했는데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고, 하려고 준비했던 말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했던 “사요나라”라는 말이 아주 슬픈 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정말 기뻤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눈물을 보인 일. 저 때문에, 그것도 떠나는 저를 위해서 눈물을 보이신 분들이 바로 일본인이라는 것이 더욱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잊을 수 없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교감을 할 수 있었던 소중한 분들을 만나 너무나 기뻤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기대되는 프로그램이었던 학교방문. 제 꿈이 선생님인지라 일본교육은 어떤지, 학교는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고, 꼭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아키타미나미고등학교’에서 준비한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면서 우리나라 학교와 다른 점들을 발견하면서 개인적인 희열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같은 또래의 학생들을 만나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고 관심사도 비슷하다는 것을 확인하니 더욱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마치고 나서 비가 왔었는데 마중해주기 위해서 나온 학생들이 비를 맞으면서까지 손을 흔들어주는 모습에 감동을 받기도 했습니다. 버스 뒤꽁무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드는 모습은 학교에서도 어딜 가든지 볼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왠지 모를 훈훈함이 느껴졌습니다.
 동참(同參)하려고 합니다. 지금은 힘들어도 미래에 일본과 우리나라의 원활한 교류를 위해서 조그마한 저의 힘을 보태려고 합니다. 제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친구들에게 전해 줄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제가 받았던 것들도 모두 돌려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또한 일본에 대해서 잘 모르고 말하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로 세워주고 싶습니다. 저에게 훌륭한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고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리가또고자이마스”

김수현(남해해성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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